나와 결혼한 여자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2016-06-08     박세회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 이건 개인적인 언어 관념일 뿐이지만, 집에 일찍 들어오라 명령하시는 분은 보통 '마눌님'이고 여행을 같이 가는 사람은 '와이프'고,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어쩐지 '나의 아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제 (아내 or 와이프 or 마누라)입니다."

일단 가장 많이 쓰는 '와이프'라는 단어부터 보자. 이 단어는 영어권뿐 아니라 영어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일에서 모국어처럼 쓰이고 있는데 어원이 젠더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영어권의 성혼서약에서 주례는 마지막에 이런 표현을 쓴다.

"I, now, pronounce you man and wife."

허핑턴포스트 US 등은 이런 이유로 '와이프'라는 단어가 젠더 편향적이므로 'Spouse'라는 단어의 사용을 권장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반려인'도 고려해 봤으나 어쩐지 '나의 반려인'이라고 말하는 순간 개나 고양이가 된 듯하여 탈락.

'마눌님'또는 '마누라'라는 표현은 어원으로만 본다면 낮춰 부르는 것은 아니다. 마누라는 조선 시대 말기 세자빈에게 쓰였던 존칭인 '마노라'에서 온 말로 배우자를 낮춰 일컫는 '마누라'로 전락한 지는 채 백 년도 안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뭐 일단 지금 쓰일 때는 '나이 든 사람이 아내를 낮춰 부르는 말'로 인식되고 있으니 탈락. 게다가 '마눌님'이라는 표현은 어쩐지 비아냥거리는 어조가 숨겨 있어서 면전에서 썼다가는 욕먹기에 십상이다.

가장 서정적인 단어로는 '아내'라는 단어가 있다. '아내'는 '안'과 사람 또는 사물을 일컫는 접미사 '해'의 합성어인 '안해'에서 'ㅎ'이 사라지고 생긴 단어다. 예를 들면 이상의 '봉별기'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의 원래 문장은 아래와 같다.

'금홍이가 내 안해가 되었으니까 우리 내외는 참 사랑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나는 나와 결혼한 여자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아내'를 선택했다. 다만 그녀는 '아내'의 어원에 조금 다른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해'에는 '집안의 태양'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 실제로 찾아보니 고(故) 일석 이희승 선생은 아내란 본래 집안의 해, 즉 태양이 어원이라 하셨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세자빈이 '마눌님'이 되었고 '남편'의 반대말인 '여편'이 여편네가 되었는데, 어원이 뭣이 중한가. 태양이 말하는데.

부부님들. 다들 어떻게 부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