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박원순을 비난해도, 새누리당과 정부는 그럴 자격이 없는 이유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에 대해 직접 고용에 의한 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하도록 하는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제안됐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대로 폐기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2014년 10월 22일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중에는 지하철 사고와 관련한 '지하철 차량 운전, 관제, 전기, 신호,통신, 스크린도어 설비 관리' 등도 생명안전업무로 포함돼 있었습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됐었다면 자회사,직영화 문제에 상관없이 무조건 직접 고용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2016-06-03     임병도

구의역 사고 현장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시장의 사과는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서울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 박원순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속된 지하철 사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고가 재발했다는 점에서도 시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사고가 발생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망 사고가 났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만 책임진다고 더는 사고가 나지 않을까요?

'자회사→직영으로 바뀌어도 사고의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 매뉴얼 때문? 문제는 돈

2015년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고장 횟수는 총 10,733건이었습니다. 하루 평균 29.4건의 스크린도어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도시철도공사의 일평균 6.6건보다 무려 4배 이상 많았습니다.

서울메트로는 민간위탁이 예산은 절감되지만,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5월 23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 가칭 '(주)서울메트로 테크'라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와 전동차 경정비를 담당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8월 1일 업무개시를 앞두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도시철도공사는 스크린도어와 차량 간 신호시스템이 상호 연동돼 있고, 스크린도어 사고 발생시 열차가 출발할 수 없어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와 차량 간 신호 시스템이 각각 독립적으로 가동되고 있어 스크린도어 고장이 발생해도 이를 인지할 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존에 최저가 낙찰제로 설치된 스크린도어를 모두 바꾸지 않는 한 스크린도어의 고장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MB정부는 공공기관의 적자 경영을 막겠다며 '최저입찰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최저가 낙찰제로 설치된 스크린도어의 설치비용은 승강장별로 1,640만원~2,450만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스크린도어의 설치 비용이 3,370만 원이었으니 천 만 원이상 저렴한 셈입니다. 그러나 최저가 낙찰을 통해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곳에서는 역당 평균 166.8건의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일반 스크린도어 설치 역의 41,3건보다 4배가 넘습니다.

'예산 달라고 매달렸지만, 외면한 새누리당'

박원순 시장은 11월 25일 서울시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를 방문하면서 별도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새누리당 김성태 간사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새누리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예산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에 싱크홀 문제나 지하철 노후화 문제, 전동차 확보 문제 등이 상당히 심각한데 서울시 예산만 갖고는 도저히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서울시는 (예산을) 다해도 1000억이다. 다른 지방들은 몇 조씩 가져간다. (그래서 내가) 매달리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구의역 사고현장을 방문해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며 "국회 차원에서도 진상조사를 통해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회에서도 진상조사를 해서 누가 지하철 관련 예산을 막았는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을 위해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법을 반대한 고용노동부'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 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국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업무는 속성상 상시적·지속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고,고용 또는 신분이 안정된 근로자가 안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할 경우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직무 수행으로 안전관리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됨.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 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 검토 보고서에서 발췌)

시민은 박원순 시장을 호되게 비난해도 됩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소중한 젊은이의 목숨이 피기도 전에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국정조사를 통해 누가 이 법안을 반대하고, 예산을 막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아이엠피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