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기술융합의 미래, 결국은 사람" | 이신두 서울대 교수 인터뷰

'창조경제'의 핵심도 결국은 인재다. 인재는 5년 만에 크지 못한다. 과도한 평가 위주의 시스템, 대학을 가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창의력 있는 인재가 생길 수 있다.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영어를 공부하고, 초등학생 때 적분을 풀면 창조경제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왜 개미는 줄지어 갈까,' '꿀벌은 자기 집을 어떻게 찾아갈까'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하는 습관을 들이면 창의력은 덤으로 생긴다.

2016-05-24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식상한 구호에 '우리 경제가 살아있던 적이 있기는 하냐'라고 농담처럼 되묻지만,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의 파고를 맞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생사를 가르는 절벽 위에 서 있다고 경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헐떡이는 경제에 산소를 불어넣는 마음으로 우리 경제가 직면한 과제들을 차근히 짚어보고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동반성장은 양극화의 해법 - 정운찬 전 국무총리

재조명되는 제조업, 위기와 전망 - 양민양 KAIST 교수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 허물기 - 김현수 국민대 교수

'한국 디스플레이의 살아있는 역사,' 'LCD의 아버지'. 한국이 디스플레이산업 선도 국가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서울대 전자공학부 이신두 교수에게 붙는 수식어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디스플레이와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인공홍채를 개발해 세간의 놀라움을 샀다. "원래 과학은 경계가 없고 이 경계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를 관악산 아래 연구실로 찾아갔다.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의 현주소, 창의와 융합의 기술 선도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방법, 그리고 그의 교육론을 주제로 열띤 강연의 장이 펼쳐졌다.

- 광학회의 석학회원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광학이란 무엇인가?

- 광학회원의 석학회원이 되셨다. 석학회원의 의미는?

- 벨(Bell) 연구소를 그만두고 한국에 오셨다고 들었다. 국가에 공헌하기 위해서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 우리는 늘 TV나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며 살지만 정작 이 TV 모니터의 디스플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 많은 원천기술을 개발하셨다. 디스플레이에 가장 애착이 가시나?

이신두 교수는 단 하나의 기초연구에 30년 투자하는 일본과

"이런 환경에서 노벨상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 요즘 노벨상 이야기가 많다. 정부가 학자들의 노벨상 수상을 장려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여러 투자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성과도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고, 일각에서는 노벨상 수상이 곧 국익 증진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란 비판도 제기하는데?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떤가? 경제성장, 신사업 R&D, 노벨상 등 다양한 목적으로 한 분야에 과도하게 특정 시기에만 투자한다. 장기적 시각은 없다.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전공과 상관없이 연구비가 나오는 곳에 유행처럼 몰린다. 92년도에 제가 처음 액정물리학을 할 때 한국에 연구자는 10명 정도였다. 그런데 디스플레이산업이 돈이 되고 정부의 연구비가 대거 투입되니까 불과 몇 년 사이에 한 연구실이 100명으로 불어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뿔뿔이 흩어진다. 기초과학의 안정적 연구가 이뤄질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 노벨상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 한편 디스플레이 자체가 사양 산업군으로 접어들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형패널은 2014년 이후 출하대수 기준 시장규모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중소형패널이 들어가는 모바일 분야 역시 성장세가 둔화세이다(애플의 성장세도 2016년 1분기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물론 한국에 이런 산업 분야가 한 둘이 아니다. 5대 수출품목이라는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철강 등 세계적으로 둔화세가 아닌 품목이 없을 정도인데, 우리의 대응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 중소기업 육성은 모든 정부가 추진해온 역점사안이다. 박근혜 정부도 히든챔피언 육성계획을 입안하였다. 그런데 결국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얻으려면 중소기업 스스로 더 노력해야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와 유사하게 세계화 속 현지화도 중요하다. 국가단위로 규정하는 개념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고, 세계는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 기술을 수출하여 현지화시키는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아울러 소재부품에 대한 정부차원의 공공수요를 인위적으로 창출할 필요가 있다. 국내 신규시장을 조금이나마 만들어야 최소한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단순히 소재 복제를 통한 국산화나 외자유치를 통한 단기간의 기술습득보다는, 신소재 개발이나 기존 기술의 지속적 축적을 유도하는 정책을 써야한다.

- 정부의 현재 기술정책이나 산업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진단하나?

- 대안을 제시하신다면?

- 우리가 롤모델로 삼을 만한 사례가 있나?

- 주제를 조금 바꿔보자. 한국의 산업을 이야기할 때, 중국의 기술 추격 문제는 요즘 단골 주제다. 한국의 산업기술을 선도해 온 공학자의 눈으로 볼 때, 우리의 기술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피부로 위기감을 느끼고 계시나?

- 디스플레이 뿐이 아니라, 조선, 반도체 등 한국의 주요 산업군이 이런 위기감에 휩싸인 것 같다. 우리가 선도할 만한 유망산업을 꼽을 수 있을까?

- 결국 기술간 융합이 핵심인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물은 4℃일 때 가장 무겁다. 다른 물질들은 모두 고체상태일 때 가장 무거운데, 물은 고체상태가 아닌 4℃일 때 가장 무겁다. 만약 얼음이 무겁다면 강바닥은 바닥부터 얼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4℃의 물이 무거우니까 언 강물이 위에 뜨는 것이다. 자연과학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생활 속 지혜를 모으는 교육, 그것이 곧 창조경제의 시작이다. 이런 원리를 꿰찬 공부를 하다보면 생뚱한 아이디어가 생기고, 세상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만날 수식 외우고 공부한다고 해서 창조경제 되는 것 아니다.

이신두 교수는 30년 전 벨연구소 연구원 당시 사용하였던 논문을 지금도 들춰본다.

- 창조경제에 대해 언급하신 김에,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 창조경제를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

'창조경제'의 핵심도 결국은 인재다. 인재는 5년 만에 크지 못한다. 과도한 평가 위주의 시스템, 대학을 가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창의력 있는 인재가 생길 수 있다.

- 결국 교육 시스템의 전환이 우리 산업기술 정책 전환에 핵심이라는 뜻인가?

입시일변도의 교육체계를 탈피해 재정립하고, 이를 통해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와 과학기술의 융합, 이종산업 간의 융합을 통한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데 있어 사람이 핵심이다. 지식의 융합과 기술의 혁신, 더 나아가 창조적 사고에 의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고유영역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통해 산업계 전반이 동반성장하면서 일자리 창출, 가계소득 증대, 국가경제 성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시작하자마자 한 때 대한민국을 이끌던 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사람'이 희망이라는데, 이 칼바람에 스러져나갈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또 다시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미 뿌리까지 메마른 나무에 물만 붓는 것은 아닌지, 그나마 살릴 수 있는 가지마저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경제환경도, 시대도 바뀌었다. 우리의 대응또한 바뀌는 것이 상식이다.

인터뷰 및 정리: 서누리 선임연구원, 김항기 연구원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