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조현병, 사회적 여성살인

나는 칼로 사람을 죽이려면 어떤 상해를 저질러야 하는지 눈에 보이듯 훤히 알 수 있다. 또 그 끔찍한 사체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서도 이입할 수 있다. 그 가녀린 피해자에 대해서, 같이 숨 쉬는 인간으로서 추모해야 한다. 여기서 나아가, 이 여성 피해자에게 그간 사회에서 잠재적 피해자로 느껴왔던 여성들이 감정이입하는 것도 매우 당연하다. 벌어진 사실은 끔찍하고, 그것이 자신이 될 수도 있었으며, 사회는 실제로 여성들에게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위협을 가해 왔던 것이다. 엄연히 우리는 여성이 실제 적대감을 느낄 수 있던 사회에 살고 있었고, 이 추모는 피해자와 같은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존중할 만한 시선인 것이다.

2016-05-25     남궁인

1.

몇 명이 붙어 양동이를 가져와 피를 닦아내자 목덜미와 후두부에 집중된 칼자국이 드러났다. 제법 깊었고, 수술이 필요할 정도였지만 많은 출혈을 설명할 수 없었다. 상처를 틀어막고 있다가, 나는 같이 온 경찰에게서 사건의 연유를 들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식칼을 들고 앉아 있는 두 노인을 무차별로 찔러댔다. 취한 데다가 항거할 힘조차 없었던 노인 둘은 그 자세 그대로 칼을 고스란히 맞았다. 앉아 있었던 방향과, 오른손으로 쥔 칼의 방향 때문에 한 명은 인체 앞면으로 칼을 맞았고, 한 명은 뒷면으로 칼을 맞았다. 합쳐서 스무 번이 넘었다. 앞으로 칼을 맞은 사람의 경동맥이 끊어져 마주 앉은 사람에게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경동맥이 끊어진 사람은 영안실로 직행했다. 피를 뒤집어쓰고, 뒷덜미에 구멍이 난 사람은 내 앞에 왔다. 그리고, 수술방에서 십여 개의 자상을 꿰매고 간신히 살아 나갔다.

2.

조현병은 전 인구의 1%에서 발병한다. 우리나라에 50만 명이 있으며, 평상시에는 유순하게, 우리와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하게 살아간다. 그들 일상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으며, 이러한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것도 매우 드물다.

이 조현병 환자가 '여성'을 이전부터 사회적으로 혐오하고 증오해서, '여성'을 골라서 벌인 '혐오 범죄'라는 틀에 넣기에는 이 질병이 가진 병리적 환청과 망상이 너무 강력하므로, 단순 결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이러한 '혐오'의 프레임에 갇힌 시선은 50만 명의 조현병 환우들에게도, 나아가 사회적인 물의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 될 것이 없다.

3.

그래서 이 사건에서 파생된 추모 열기와, '여혐'의 논란 자체를 하나의 현상으로 분석해야 한다. 여성들은 태생적으로 완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생을 약자의 입장에 서 있었고, 불안해왔으며, 범죄의 표적이 되었고, 또 실제로도 당해 왔다. 그 때문에 평생을 공포에 떨고 조심스러워 해온 여성들 사이에서 나온 이번 반응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피해자는 어떠한 죄도 없는 스물셋의 여성이었고,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유희를 즐겼을 뿐이며,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되었다.

여기서 나아가, 이 여성 피해자에게 그간 사회에서 잠재적 피해자로 느껴왔던 여성들이 감정이입하는 것도 매우 당연하다. 벌어진 사실은 끔찍하고, 그것이 자신이 될 수도 있었으며, 사회는 실제로 여성들에게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위협을 가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시선으로, 나는 일련의 이번 사태를 넓은 의미의 '여혐'이 실제로 발현된 것이라고 본다. 엄연히 우리는 여성이 실제 적대감을 느낄 수 있던 사회에 살고 있었고, 이 추모는 피해자와 같은 여성으로서 느낄 수 있는 존중할 만한 시선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 맞서서 들고 나와야 할 피켓은 '남성을 혐오하지 마라'가 아니라 '이해한다'가 되어야 한다.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여성이 불안감을 느끼는 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으로서 미안하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서로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며, 약간 완력이 강하게 태어난 존재로 너희들을 꼭 지킬 것이다' 가 되어야 한다. '혐오'의 시비와 서로 편을 가르는 일은, 희생자를 위해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 50만 조현병 환우를 위해서도 옳지 않으며, 세상 둘뿐인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에 있어서도 옳지 않다.

질병이 있는 환자가 있었고, 처참하게 살해당한 사람이 있었다. 혐오스러운 범죄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든 더 이상 혐오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피해자에게 깊은 의미에 추모를 보내며, 동일 범죄의 위험을 예방하고, 우리의 약자가 그간 느꼈을 감정을 이해하며, 더 이상의 피해에서 모두를 지켜내야 한다. 관용하는 자세만이 우리가 이 사건에서 더 큰 미움을 낳는 일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