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법학교수가 말하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여성혐오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

2016-05-20     박수진
ⓒhpk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실제로 저는 그 범죄자 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도 이 문제를 "여성혐오범죄다"라고 부르는 것이 유의미한 것은 이 문제를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범죄자는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언급했고, 그 언급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전형적인 혐오범죄의 양태(대상 집단의 공포와 분노)가 나타난거죠. 그런 분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5월 19일 홍성수 페이스북

강남역 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단순히 '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줬죠. 그건 이 사건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고,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고, 이미 여성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남역 사건은 그 '결과'이거나, 아니면 문제를 더욱 '증폭'시킨 것일 뿐입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현 단계에서 이 문제를 '여성혐오범죄'라고 보는데 별 무리가 없고, 정신분열 여부는 이런 맥락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슈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사건 자체를 혐오범죄로 규정할 수 없어도 이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의 중요한 의미를 살펴야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사건 자체의 성격 규정보다는 이 사건에 대한 반응을 통해 드러난 여러 문제에 주목해야합니다.

20일 이어 게재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비유하자면, 땅 밑으로 어떤 용암이 흐르고 있던 겁니다. 여성들은 대개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산발적인 문제제기에 그쳤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제대로 폭발하게 된 것이죠. 강남역 사건은 그런 계기를 제공해준 것이고, 그로 인한 반응을 주의깊게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해당 사건 자체가 증오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실 실정법이 없어서 법적 실익도 없습니다. 양형에 영향을 어떻게 미칠지는 미지수고요) 부차적인 문제죠. 설사 그 사건 자체가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해도, 이 사건으로 나타난 후폭풍의 의미는 전혀 삭감돼지 않거든요. - 5월 20일 홍성수 페이스북

땅 밑에 용암이 흐르고 있다면, 당연히 그걸 제거하는게 근본적인 해결방법이겠죠. 거대한 화산폭발이 있었다고 그것만 잡으려고 하면 안될겁니다. 그런 점에서, '강력범죄'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만 집중하는 것은 -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 곤란하다는 겁니다. 여성들이 처해있는 여러가지 차별과 적대, 공포의 원인을 해결해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겠죠. 또한 이 사건은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얼마든지 이렇게 '물리적 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