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심경 고백, "터널 속에 서 있는데 빛이 안 보여요"

2016-05-21     김태우

17일 오후 인천 박태환수영장 보조풀에서 훈련하고 있는 박태환.

토요판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태환 선수를 이틀 동안 동행취재하며 규정에 대한 입장, 징계 과정의 고충, 올림픽 출전 여부에 따른 고민 등 속깊은 얘기를 들었다.

박태환 선수는 올림픽 출전자격 논란에 대한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으로 자칫 대한체육회와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지지 않을지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모든 사태가 잘 해결돼 올림픽에 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7일 오전 인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는 박 선수가 다양한 표정을 짓는 모습.

는 논란 속에서도 말을 아껴온 박태환 선수를 지난 17~18일 이틀 동안 동행 취재했다. 논란에 대한 입장, 도핑사건 소회, 앞으로의 포부, 개인적인 고민 등이 담긴 그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17일 오전 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영선수 박태환(27)은 자신의 처지를 터널에 빗댔다. ‘터널처럼 외로웠다’는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그는 조금 외롭고 지쳐 보였다. 감독도 없이 홀로 마친 새벽 훈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없던 다크서클도 생겼다고 했다. 밤에 잠을 설치는 일도 잦다고 했다.

이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태환은 올림픽 출전자격 논란에 대한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으로 자칫 대한체육회(체육회)와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지진 않을지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한때 피겨선수 김연아와 더불어 국민영웅으로 불렸지만, 현재 그는 80일도 남지 않은 리우올림픽의 출전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초중고 선수들이 차지한 수영장 한켠에서 감독도 없이 홀로 훈련을 하고 있다. 2004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이후 그의 가슴에 줄곧 붙어 있던 태극기를 다시 달 수 있을지 장담할 수조차 없다.

훈련을 앞두고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지난 4월6일 대한체육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특정인을 위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은 불가하다고 결론냈다. 다급해진 박태환 쪽은 같은 달 26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카스)에 중재를 신청했다가 현재 보류 요청을 해 놓은 상태다. 박태환의 소속사 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는 누나 박인미씨는 “각국 국가대표 선발기구 최종 결정 뒤 21일 내에 제소해야 한다는 카스 규정에 따라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기한 만료 하루 전 서류를 전달했으나 체육회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순리라고 판단해 일단 보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중재가 재개돼 카스가 박태환의 손을 들어주면 체육회가 따르지 않을 순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 장달영 변호사는 “카스의 결정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의무 이행을 안 할 수는 있지만 카스 결정은 곧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이라고 했다.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박태환 쪽은 카스 중재가 아닌 체육회의 결단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두 차례 연기 끝에 어렵게 잡힌 체육회 사무총장과의 25일 만남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박태환은 지난 2일 인천시청 영상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처를 호소하며 큰절까지 올렸다.

는 이번 논쟁과 관련해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수락 직후인 14일 박태환 쪽이 카스에 중재 요청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17일 대한체육회가 박태환의 국가대표 선발 문제는 항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카스에 제출하자 이튿날 오전 박태환 쪽은 이를 반박하는 입장문을 별도로 카스에 보냈다. 리우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 최종 마감(7월18일)까지 두 달이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체육회에선 특정 선수 때문에 규정을 바꾸는 건 특혜라고 말하고 있고 그 의견에 동의하는 여론도 적지 않은데요.

“사실 그동안 말을 아껴 왔어요. 지금도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요. 괜한 오해가 생길까봐요. 물론 이 규정이 국제기준에 걸맞은 룰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죠. 그런데 다른 나라들은 삭제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인정하지 않는 규정이잖아요. 체육회는 저만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요. 이 규정으로 발목 잡힐 선수들이 또 나오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피해를 볼 그 선수들을 위해 이번 기회에 논의해보자는 거예요. 물론 체육회 입장을 아예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규칙·규정이라는 게 고심 끝에 만들었을 거고 쉽게 고치기 힘들 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거라면 이번 논란을 계기로 찬찬히 따져보자는 거죠.”

17일 인천 박태환수영장 보조풀에서 훈련하는 박태환 선수의 수영복 위로 올림픽 오륜기 문신이 얼핏 드러난 모습.

-일부에선 올림픽 출전을 고집하는 박 선수가 유망주들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일한 A기준기록 선수인 박태환이 올림픽에 나가지 못할 경우 B기준기록 4명의 선수가 올림픽 티켓을 얻게 되는 규정은 2012년 런던올림픽 때부터 변경됐다. 국제수영연맹은 출전 인원을 제한하기 위해 A기준기록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종목이라도 B기준기록 선수가 무조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가 후배들의 기회를 막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11일 발표된 1차 국가대표 선발 명단에 들지 못했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징계 뒤 복귀전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4관왕이라고 하지만 제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기록은 아니에요. 더 분발해야죠. 사실 성적에 대한 부담도 컸지만 대중 앞에 나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어요. 제가 겁이 되게 많은 편이거든요. 훈련하면서도 ‘관중들이 야유를 하면 어쩌지? 물병과 계란을 던지면 어쩌지?’ 하고 트레이너 형에게 여러 번 물어봤어요. 형은 ‘경기로 보여주면 야유가 환호로 바뀔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야유가 나올 줄 알았거든요. ‘그래도 감수해야지’라고 마음먹고 나갔는데 관중들이 응원을 해주시는 거예요. 너무 감동해서 닭살이 돋았어요.”

현재 박태환은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이마저도 그는 인천시청의 배려라며 감사하다고 했다. 새벽 6시부터 아침 8시30분까지 2시간30분가량을 제외하고 오후 훈련시간(4시~6시30분)에는 일반 이용객 틈새에서 훈련해야 한다. 17일 오후 박 선수가 인천 박태환수영장 보조풀에서 훈련하고 있다.

-팬들의 환호가 그리웠나 보군요.

-만약 끝내 올해 올림픽 출전을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바로 다음 대회를 준비할 건가요?

지난해 박태환이 금지약물을 투여하는 과정은 선수 본인과 의사가 투약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빚어진 ‘의료사고’였던 것으로 검찰 수사는 결론냈다. 박태환 쪽은 수차례에 걸쳐 주사제 성분이 금지된 약물이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요청한 반면 의사는 이를 간과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의사 김아무개씨를 지난해 2월 불구속 기소했다. 2015년 12월 1심 법정인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강병훈 부장판사는 “박태환에게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올 수 있는 네비도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며 김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김씨는 1심 재판과정에서 박 선수에게 투여한 네비도가 금지약물인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쪽 변호사는 “단 1회의 진료기록부 미기재로 벌금형 100만원 선고는 과도하다”고 항소했다. 검찰도 무죄가 나온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에 대해 항소했다. 오후 훈련에 앞서 스트레칭 중인 박태환에게 도핑사건에 대해 물었다.

물놀이가 좋던 시절. 3살 무렵인 1992년 여름, 가족여행에서 누나와 함께 물놀이를 하던 때. 지금은 조카들과의 물놀이가 유일한 훈련외 수영이다.

생애 최초의 금메달. 5살 때 천식을 치료하게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유치부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1995년.

-도핑으로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졌는데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후회되고 억울하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어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수영이고, 수영으로 많은 분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렸으니까 죄송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게 수영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3월 기자회견에서 박태환은 네비도 주사를 맞은 이유에 대해 “나는 수영을 하기 때문에 피부가 건조하다. 얼굴이 붉은 상태였기 때문에 병원에 가게 됐다. 피부 관리를 받으면서 비타민 처방을 의사 선생님이 해줬다. 의사는 도핑과 관련해 비타민 주사가 어떠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수사 결과 고의성이 없다고 결론났지만 도핑 징계는 고의성과는 무관하지 않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운동선수로서 고의든 아니든 책임이 있는 거니까 사실 제가 그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만큼 제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벌어진 일이니까요. 지금도 그때 생각이 많이 나서 속상하네요.”

노민상 감독님과. 7살때 노민상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노 감독님의 훈련은 혹독했다. 함께 수영을 배우던 친구들과 함께.

-도핑검사는 실제 어떻게 이뤄지나요?

-늘 긴장하고 있어야겠네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는 누리집에서 도핑테스트를 두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든 선수는 도핑검사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도핑검사를 회피하는 행위는 한국도핑방지규정 및 세계도핑방지규약에 의하여 도핑방지규정 위반이 발생한 것에 해당하며 이에 대한 제재는 자격정지 4년이 부과됩니다.”

실제 도핑검사 대상 선수들은 3개월 단위로 자신의 소재지 정보를 누리집에 등록해야 한다. 경기 기간 외 검사는 사전 미통지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수의 소재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검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재지 정보 제출 대상자인 선수가 12개월 동안 총 3회의 소재지 정보 제출 불응 위반을 범한 경우, 도핑방지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는다.

절정의 순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자 자유형 200미터 우승을 하던 순간. 수영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징계 기간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서 몇 개월 동안은 집에만 있었어요. 집 밖에 나가면 가면을 쓰고 나가야 하나, 그래도 알아보면 어쩌지 하고 온갖 생각을 다 했어요. 생전 제 이름을 검색한 적이 없었는데 기사 댓글도 보게 되고 ‘약쟁이’라는 댓글에 상처도 받았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자꾸 시야가 좁아지고 겁도 나더라고요. 안 좋은 선택을 하는 스타들에게 공감을 느끼는 상태가 되기도 했어요. 남몰래 힘들어하면서 공포심에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런 선택을 하는구나, 이해가 되더라고요.”

수영꿈나무. 서울 도성초 5학년 때인 2000년 대통령배 전국수영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학교정문 펼침막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최연소 국가대표. 서울 대청중 2학년 때인 2003년, 해군참모총장배 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 이듬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돼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다.

-지금도 겁이 나요?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로 진심을 보여드리는?

-가족들의 고통도 컸을 거 같아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실격부터 베이징올림픽의 영광 뒤인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기도 했고 선수 생활에 곡절이 많았어요. 이번 시련도 자신을 성장시킬 계기가 될 거라고 보나요?

“저도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스타트를 일찍 뛰어서 실격한 뒤 스타트 연습을 많이 해서 지금은 반응 속도가 가장 빠르거든요. 그 실수를 두 번 다시 안 하게 된 거죠. 2009년 로마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예선 탈락 겪고 나서는 예선 때도 긴장을 많이 하면서 실수를 크게 줄였고요. 그런데 지금 같은 일은 실수라기보다는 애초에 없었어야 할 일이죠.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내 인생에는 이렇게 굴곡이 많을까. 모두 지나가기는 하겠지만 ‘좋은 시간도 지나면 곧 바닥을 기어가는 시기가 오겠구나, 그다음엔 또 한 번 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하고요. 운 좋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 이번 무대가 다시 날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라죠.”

18일 오전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다시 만난 그는 제스처를 섞어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20대 청년의 감출 수 없는 발랄함이 번져왔다. 전지훈련으로 몇 달씩 해외를 떠도는 터에 여자친구 사귈 시간도 안 된다는 그는 여친이 생기면 청바지와 티셔츠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박태환, <프리스타일 히어로>). 오전 훈련을 마친 뒤 편의를 제공해준 인천체육회 관계자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런데 경기 중에는 무슨 생각 하세요?

-가령 가수들은 쉴 때 노래를 안 부른다던데.

-무슨 낙으로 살아요?

수영은 외로운 종목이다. 0.01초의 기록을 두고 물속에서 홀로 분투해야 한다. 박태환은 요즈음 물 밖에서도 혼자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웃는 얼굴이었다. 2009년 로마선수권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했을 때도 ‘로마 날씨가 덥더라’며 밝게 웃던 그였다. 올림픽 출전 전망이 흐리다는 말을 하면서도 박태환은 웃었다.

지난 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박태환 선수의 2016년 리우올림픽 참가 여부에 대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70.9%가 ‘올림픽 출전에 찬성한다(매우 찬성 42.0%, 찬성하는 편 28.9%)’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