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억하는 작가들

세월호 '사건'(박민규가 말한 대로 '사건'이 더 정확하다)에 대해 감상이든, 생각이든 뭐라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2015-04-16     박세회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엔 당신이 하고 싶었지만 잘하지 못했던 말이 가지런한 산문으로 정리되어있다. 인세를 포함한 매출액 전액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에 기부된다. 김훈의 특별기고를 제외한 다른 글은 모두 그 책에서 발췌했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中

지난 달 16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안에서 한 여고생은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傾斜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中

누군가 역사는 저절로 진보한다는 우리의 거대한 착각 때문에 세월호는 21년 전의 서해 페리호를 더 나쁘게 반복하며 서해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러니 먼저 우리는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나아지는 길이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中

공공의 적인 공공에게 어떤 혐의가 있을 때

누구냐고 묻고 싶다.

세월호가 으리으리한 사고로 정리되기를

만약 이 나라가 침몰한다면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한다. 이것은

국민을

‘사건’이다.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中

어떻게 지내십니까.

세월호가 가라앉고 백 일이 되는 날, 안산에서 서울광장까지 꼬박 하루를 걸어온 유가족을 대표해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녀는 말했다. 엄마아빠는 이제 울고만 있지는 않을 거고, 싸울 거야.

나는 그것을 듣고 비로소 내 절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얼마나 쉽게 그렇게 했는가. 유가족들의 일상, 매일 습격해오는 고통을 품고 되새겨야 하는 결심, 단식, 행진, 그 비통한 싸움에 비해 세상이 이미 망해버렸다고 말하는 것, 무언가를 믿는 것이 이제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배명훈, ‘누가 답해야 할까?’ 中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은 단순한 변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진짜로 권한이 없다. 그들은 진짜로 모른다. 그게 우리 사회의 정역학이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들 중 많은 수가 전혀 하중을 견뎌내지 못하는 가까 기둥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 매뉴얼대로 돌아가는 평상시 상황만 처리할 수 있는 부품들로, 비상 상황이나 특수 상황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품을 대체시켜버리는 것. 그리고 그 정품들의 성능을 폄하하고 모욕하고 배제해 버리는 일.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누가 질문에 답해야 할까?”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이런 희망을 품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당신을 구하러 갈 수 있기를. 늦지 않은 때에 우리가 우리를 구출해내기를.

김훈, 중앙일보, 이투데이 특별기고문 발췌

1월 1일)

이 ‘특별법’의 입법과정은 사태의 진상을 규명해서 ‘안전사회 건설’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리더십이 작동된 것이 아니고, 이 비극이 몰고 올 무서운 파괴력의 폭심(爆心)으로부터 도망치고 벗어나려는 정치세력들이 국민과 유족들의 아우성에 몰려서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자 강고한 보호벽으로 자신들을 방호하면서 탈출구를 뚫어내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이투데이 특별기고(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