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는 청와대·정부의 '한국형 양적완화'에 맞장구를 칠 생각이 없다

2016-05-05     허완
ⓒ연합뉴스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구체적인 견해를 밝혔다.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국민이 납득할만한 타당성이 필요하고 지원금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한 출자보다 회수를 전제한 대출 방식이 중앙은행의 원칙에 부합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출자 방식을 배제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정부와 시각차를 나타낸 것이어서 양측의 협의 과정에서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있다.

◇ 이주열 "중앙은행 손실 최소화…미 연준도 원칙 따랐다"

대출 등의 다른 구조조정 지원 방식보다 지원한 돈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이 손실을 볼 권한까지 가진 것은 아니라는 말도 했다.

심지어 이 총재는 미국의 사례를 거론하며 출자 방식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만약 연준이 기업 지원으로 큰 손실을 봤다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외국 사례를 언급한 것은 선진국의 중앙은행과 달리 한은이 경제 상황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반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ADB연차 총회 참석차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 중인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일(현지시간)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총재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책은행 자본확충에서 국회와 소통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하겠다는 발언이 적절하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한은이 손실을 보면서까지 국책은행에 출자하려면 적어도 국민이 공감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이 총재의 주장이다.

이 총재는 "어느 나라를 봐도 구조조정은 정부의 주된 역할"이라며 정부와 한은의 역할에도 선을 그었다.

특히 이 총재는 미국 사례를 소개했다.

◇ 한은-정부 인식차 드러나…이주열 "논란 확대는 원하지 않아"

지난 2일 이 총재가 구조조정에서 한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누그러진 한은과 정부의 갈등 국면이 재점화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양적 완화라는 표현보다 '국책은행 자본확충'이 더 적합한 용어라는 의견도 내놨다.

이 총재는 이런 의견을 아세안(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유 부총리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청와대는 그동안 한은의 국책은행 출자가 필요하면 관련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관계기관 협의체는 첫 회의에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포괄적으로 검토한다는 큰 원칙에는 뜻을 모았다.

이 총재의 설명대로라면 한은의 국책은행 출자뿐 아니라 코코본드 매입도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한은과 정부가 유일호 부총리까지 언급한 '국민적 공감대'까지 확보하려면 야당 설득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