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안방의 세월호'인 이유

어엿하게 이 제품이 팔리기까지 관여된 모든 정부 부처의 관계자와, 인간의 안위와 존엄을 담보로 잡고 매출을 올리던 기업체들. 이 사고는 우리가 겪었던 많은 참사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가까이는 관과 기업이 인간의 목숨을 걸고 위험한 판을 벌이다가 결국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가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는 것도 부족함이 없다. 이 끔찍한 일련의 사태에서 제 3자가 과학으로 원인을 밝혀낼 때까지, 그 안에 관계한 사람 중 합리적인 의문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참사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는 점이, 참으로 소름끼치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2016-05-04     남궁인
ⓒ한겨레

1.

'괴질'은 지금까지 알려진 현대 의학으로 환자의 질병을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불가능할 때 의사들이 사용하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괴질이구만... 괴질.' 허나 환자가 원인을 모르지만 말끔하게 나았다면 의사들이 자조하거나 한탄할 필요도 없다. 고로 의사가 환자 앞에서 '괴질'이라는 단어로 넋두리하는 일은, 환자가 죽었거나 도저히 치료되지 않을 때 사용된다.

10년 전에 이와 같은 '괴질'을 마주한 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였고, 당시 의학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십여 명의 소아 간질성 폐질환 환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환자들은 괴질답게 급격히 나빠져 죽었다. 간질성 폐질환은 원인 불명으로는 잘 생기지 않고, 경과도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눈앞에 있으면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일이다. 허나 그는 이 환자의 생명을 꺼뜨리는 '괴질'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려 했다.

인간은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호흡한다. 그 대기 중에는 우리가 유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섞여 있다. 시체 소각장, 쓰레기 매립장, 방사능 처리소, 비료 공장, 황사, 미세먼지, 꽃가루부터 가정에서 쓰는 향초, 방향제, 모기약, 향수, 애견용품에, 호흡기가 아닌 물이나 복용하는 약, 음식, 세균과 바이러스 등등 모든 것이 원인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전국 의사 동료들을 통해 비슷한 종류의 '괴질'을 모은 몇 백 명은, 실은 인구 대비 적은 숫자다. 전국에 고르게 분포했지만, 그래서 있을 수도, 아니면 없을 수도 있는 원인.

결국 한 과학자의 노력을 기반으로 한 2011년 대규모 역학조사로 진상이 알려지고, '괴질'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로 확정되었으며, 해당 제품은 모조리 판매중지 및 폐기처분 되었다. 이 악마 같은 제품이 시장에서 없어진 이후 '괴질'은 우리나라에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괴질'을 단순 '괴질'로 치부했다면 해낼 수 없던 일이었다. 과학적인 접근과 개인, 그리고 학계의 열정이 이룩한 일었다.

2.

처음엔 '가습기 살균제'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1994년 유공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 그리고 2001년 문제의 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과 PGH(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을 넣은 제품이 탄생한다. PHMG와 PGH는 당시 널리 쓰이던 살균제로, 인체 피부에는 독성이 적은 편이라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PHMG가 인간의 피부에 닿는 살균제로는 충분한 연구결과로 인체에게 사용할 수 있게 허가되어 있었지만, 가습기에 넣어 호흡기로 분무할 경우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가습기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더불어 건강에 관한 관심과 호흡기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위협이 고조된다. 그러자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기업들에선 이미 허가받은 이 제품의 홍보에 열을 올린다. '가습기는 조금만 청소하지 않아도 습도가 높아 세균이 쉽게 번식합니다. 가습기의 수증기는 직접 들이 마셔야 하므로, 이 제품을 넣지 않으면 여러분은 세균을 들이 마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아이에게도 안심'

지금 보면 기가 찬 문구를 기업체에서는 엄연히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 홍보는 사람들에게 호흡기 질환의 불안감과 사용시의 안정감을 주었다. 이 과정으로 세계에 유례없는 시장이 개척되고, 옥시레킷벤키저에 이어 애경,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 2011년 판매금지가 될 때까지 신종플루 등의 호재를 업고 연간 60만 개가 팔려나갔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 개도 팔리지 않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결과는 잘 알려진 바와 같다. 100여 명이 죽었고, 300여 명이 평생 후유증이 남았으며, 피해 상황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하여 이 책임은 매우 다각도로 분석되어야 한다. 안전불감증에 시달리는 한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벌어진 국지적인 일. 어엿하게 이 제품이 팔리기까지 관여된 모든 정부 부처의 관계자와, 인간의 안위와 존엄을 담보로 잡고 매출을 올리던 기업체들. 이 사고는 우리가 겪었던 많은 참사를 다시 떠오르게 한다. 가까이는 관과 기업이 인간의 목숨을 걸고 위험한 판을 벌이다가 결국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가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안방의 세월호'라고 부르는 것도 부족함이 없다.

또, 이 과정에서 과학을 위시한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된 것에도 공통점이 있다. 이세돌과 바둑을 둬서 이기는 것이 비단 과학이 아니다. 인간에게 적용되는 과학은 일어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의 수까지 계산해 안전을 추구하는 인간적이고 치밀한 학문이다. 이 끔찍한 일련의 사태에서 제 3자가 과학으로 원인을 밝혀낼 때까지, 그 안에 관계한 사람 중 합리적인 의문을 품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참사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는 점이, 참으로 소름끼치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이는 관과 기업의 안일함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며, 책임에 있어 정부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대표가 5월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옥시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3.

하지만 이 문제는 그네들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고의였건 아니건, 더욱 죽고자 하는 고의가 없었던 것은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 하등의 잘못도 없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이 제품을 믿고 사용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찾아온 간질성 폐 질환, 인간의 폐가 말단부터 섬유조직화되어 굳어가는 질병. 이 질병의 끔찍함은 직접 겪은 사람과,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간신히 공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질병은 인간이 산소를 얻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으로 숨을 내쉬더라도, 생존에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얻을 수 없는 고통에서 시작한다.

현실적으로 이 책임소재의 공방에선 역시 지난한 과정이 예견되어 있다. 평생 호흡을 해온 이 '괴질'환자들에게 단 하나,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함으로 이 끔찍한 질병이 발생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태가 수습돼온 5년의 과정도 심히 절망적이다. 이 제품을 허가를 해준 정부에서 2012년 가습기 살균제를 안전하다고 허위로 표시했다는 이유로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와 홈플러스 등 4곳에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한 것이 현재까지 처벌의 전부다. 피해 규모와 남은 사람의 고통을 생각해 보건대, 일반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금액이고, 또 5년간의 세월이다. 처음부터 이 제품을 이 용도로 사용할 것을 허가한 게 정부라는 것이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납득이 가는 점이라고나 할까.

인간을 상대로 이문을 얻으려는 자가 인간에 대해 고단하고 심도 있는 고민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떤 패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지, 그 살인적인 수증기에 무방비였던 다수의 인간들이 실제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불매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용의가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이 행위에 대해 뭉클함을 느낀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너무 많지만, 꼭 하나, 인간의 존엄이 어떠한 행위보다도 앞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충분히 이 목을 옥죄는 고통에 인간으로서 공감하고 또 이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실력으로 발현되는 행위는, 현실적인 안전장치와 허가 제도를 뜯어고치기에 앞서, 우리가 인간의 존엄을 숭고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일 수 있는 행위라고, 나는 과학자의 한 사람이기에 앞서, 선량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