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꼴보수 명계남

극우꼴보수 노인을 연기한 배우가 명계남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현충원 가까운 육교 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지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자기만큼 과격한 한 청년에게 얻어맞아 눈이 퍼렇게 멍든 채 택시 타고 돌아갈 때 잠깐 스치는 그 표정. 뭘 한 것 같긴 한데 했다고 자부하자니 민망하고, 여전히 어딘가 허전하고, 몸은 아픈데 시간은 그렇게 가고.... 배우야 자기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어떤 역이든 연기하는 게 당연하고 명계남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랐다.

2016-05-03     임범
ⓒ우리 손자 베스트

(김수현 감독)가 처음 상영됐다. 백수 노인과 백수 청년, 둘이 주인공인데 둘 다 우익단체 소속이다. 노인은 '어버이 별동대'의 대장이고, 청년은 인터넷 모임 '너나베스트'에 사진과 글을 열심히 올린다. 정치 문제에 세대 문제까지 '핫'한 요소들이 엉킨 설정이다. 최근의 어버이연합 논란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주 가서 봤다.

정치적으로 어느 진영이냐를 떠나, 이들이 하고 다니는 짓거리는 보기에 불편하다. 약자에게 잔인하고, 남에게 모욕을 주고,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또 그들은 쓸쓸히 늙어가는 외톨이 노인이고, 미래가 갑갑한 청년 백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들의 행동에 담긴 찌질함, 무지함, 적개심이 남의 것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연민이 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영화는 표나지 않게 '쓱' 빠져나온다. 사회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동시대적 찌질함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어려운 줄타기를 경쾌하게 해낸다.

이 극우꼴보수 노인을 연기한 배우가 명계남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이 영화 크레딧에서 이름을 '동방우'로 바꿨다.) 현충원 가까운 육교 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지를 파헤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자기만큼 과격한 한 청년에게 얻어맞아 눈이 퍼렇게 멍든 채 택시 타고 돌아갈 때 잠깐 스치는 그 표정. 뭘 한 것 같긴 한데 했다고 자부하자니 민망하고, 여전히 어딘가 허전하고, 몸은 아픈데 시간은 그렇게 가고.... 배우야 자기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어떤 역이든 연기하는 게 당연하고 명계남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랐다.

소재든, 배우든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들을 피해 다니는 그릇된 태도가 총선을 계기로 바뀌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영화계에 퍼져 있는 듯하다. 이 영화는 총선 전에 기획됐고, 또 기존 영화자본의 투자 없이 전주영화제 기금과 성금으로 만들어졌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영화가 많을수록 관용과 이해의 문화가 커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듯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