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의 아픔도 아픔이다

누군가 반문하기도 했다. 가벼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야 그렇다고 쳐도 성폭행이나 살인으로 들어온 이들에게도 그런 치료를 해주는 게 맞느냐고, 그들의 인권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냐고. 그런 질문을 들을 때면, 어찌 답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하곤 했다.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2016-04-26     김승섭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으로 재소자와 교도관 모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쉽다. 사진공동취재단

'당신들이 뭘 알아?'

교도소 의무과에서 만난 의무과장은 우리에게 열변을 토했다. 얼마나 자신이 힘든지 아느냐고, 아까 만난 재소자들 대부분이 살인과 같은 중범죄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그들이 걸핏하면 교도소 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을 협박하고 걸핏하면 소송을 건다고, 얼굴에 대놓고 침을 뱉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게 어떤 일인지 아느냐고 말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마음이 복잡했다. 양심수들이 0.75평 독방에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던 교도소와는 많이 달랐다. 교도소의 수용시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지만, 교도관들의 근무환경도 열악했다. 재소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복역해야 하고, 또 그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걸까. 죗값을 치르기 위해 들어와 있는 그들의 인권 보호는 어디까지일까. 밤낮없이 일하는 교도관의 근무환경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내가 근무했던 곳은 만 23살 이하 재소자가 있는 소년교도소와 재판을 앞둔 성인 재소자가 머무는 구치지소였다. 그곳에서 일하며, 교도소 진료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배워갔다. 의과대학에서 배웠던 지식과는 다른 공부가 필요했다.

"마음이 아직도 16살입니다"

재소자는 감옥 생활을 하며 죗값을 치른다. 아플 때 방치당하는 것까지 징역살이에 포함될 이유는 없다. 사진공동취재단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나보다 재소자 진료 경험이 많은 의무과장님께 상의드렸더니 그 친구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겨울철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감방이 너무 추워 몰래 반입한 1.5ℓ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채워서 안고 잤던 것이다. 맨살에 그 뜨거운 물을 품고 잤던 것이다. 교도소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들키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밤새 꼭 품고 있었으니 그 화상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아프기는 아픈데 정확히 모르는 경우였다. "배가 언제부터 아팠어요?"라고 물었는데, 그 재소자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답을 못했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모습에 처음에는 그냥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감방을 쓰는 주먹 좀 쓰는 조직 출신 재소자의 약을 대신 타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의무과에서 간병일을 돕던 아이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 어느 날이었던가, 매일같이 허리가 아프다고 의무과에서 약을 타가던 한 재소자가 자신이 원하는 다른 약을 주지 않겠다는 내 말에 갑자기 폭발했다. 책상을 주먹으로 치고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그날 오전 진료를 마치고 창문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는데, 간병일을 돕는 아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그 녀석들 16살에 교도소 들어와서 마음이 아직도 16살입니다. 사회생활도 하고 사람도 만나야 변하는데, 그 아이들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거였구나.

차분하게 표준어로 협박당하다

인권위 조사 때, 교도관이 말했던 것과 같은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이미 여러 중범죄를 저지르고 복역하다 새로 저지른 사건이 발견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 구치지소에 온 한 재소자는 교도소 시스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협박할 때도 내게 절대로 욕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욕을 하면 처벌을 받기 때문이었다. 욕이 전혀 섞이지 않은 표준어로 이렇게 사람을 협박하고 모욕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몸으로 깨달았다. 협박을 통해 그가 얻으려는 것들은 사회에 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게 통한다는 걸 보여주기 싫어 요구사항을 거부하며 버텼다. 그렇게 버티는 과정이 내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학위논문을 국내외에서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은 물었다. 다른 취약계층도 많은데, 왜 하필 죄짓고 감옥에 있는 재소자냐고. 자유를 빼앗기고 감금생활을 하면서 죗값을 치르는 것이지 아플 때 방치당하는 것까지 징역살이에 포함될 이유는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또 어느 사회에서나 죄를 짓는 사람의 대다수는 사회에 있을 때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해 의료서비스로부터도 소외된 약자니까, 교도소에서라도 그들을 치료해주면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도 말했다.

그들의 인권도 존중해야 하나?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2016년 3월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