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죄짓지 않는 법

모르고 죄 지을 확률은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산층 이상과 같이 사회 주류에 가까울수록 높아진다. 한 사회의 주류로 산다는 것은 무신경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소외되고 배제당할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에게 세상은 살 만한 곳이기 마련. 자신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2016-04-22     이환희

장면 1.

장면 2.

둘 다 명백하게 문제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위 일화에 등장하는 두 분을 포함해 여기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이해한다. 사람은 혼자 크지 않으며, 사회의 산물에 가까우니까. 위 두 상황의 문제점을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가 공기 속 산소처럼 녹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누구든 잘 몰라서, 무심결에, 누군가를 향해 차별하고 혐오하는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알고 저지른 죄를 나쁘다고 여기지만 불교에서는 모르고 저지른 죄를 더 나쁘다고 본다지 않나.

공부의 방법으로 가장 만만한 것은 아무래도 좋은 책을 읽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비롯해, 여성을 중심으로 성소수자, 미성년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시선과 감수성으로 한국 사회를 보게 하는 그런 좋은 책들이 죄짓는 빈도를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에는 이라영의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그 좋은 책 가운데 하나였고. 좋은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단초는 얻을 수 있었다. 저자의 탁월한 필력 덕에 이미 알고 있는 것들조차 새롭다고 느꼈고,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점은 덤이었다 말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