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5가지 에피소드

2016-04-22     박세회

"시간은 생각의 산물이 뿐입니다. 그건 실제가 아니에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왜 나이가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프린스는 태어날 때부터 '프린스'였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무대 명, '프린스 로저스'에서 그의 이름을 따왔다. "난 내가 하지 못한 걸 내 아들이 모두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프린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말이다.

'채펠스 쇼'를 봤다면 그가 예전에 농구로 찰리 머피를 박살 내버린 에피소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래는 오늘 생을 마감한 이 전설의 뮤지션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에피소드 들이다.

1. 프린스, 절대자가 되다

프린스가 '더 러브 심볼'(나중에 붙인 이름)로 이름을 바꿨을 때, 그의 레이블은 언론에 커스텀 폰트를 담은 플로피 디스크를 우편으로 보내는 데 전념해야 했다.

프린스는 1993년 지금은 우리가 '더 러브 심볼'이라고 부르는 기호로 이름을 바꿨다. 바로 이 기호다. 마치 오래 전 성서에서 여호와를 표기할 때 특정한 기호를 사용하듯이 말이다.

노란빛의 플로피 디스크에 이 심볼의 커스텀 폰트를 담아 우편으로 발송해야 했다. 기자들이 그의 이름 대신 쓸 수 있게 말이다.

배너티 페어는 프린스를 인터뷰하면서 스튜디오에 있는 동료들이 그를 심볼로 부르는지 물었다. 프린스는 그 심볼의 페르소나를 제삼자로 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 분을 어떻게 부르는지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부르면 우리가 그분 목소리를 알아들을 테니까요."

2. 다른 셀러브리티를 지배하다

코미디언 데이브 샤펠이 그를 패러디하자 그는 자신의 앨범에 허락도 구하지 않고 그 패러디 사진을 싱글 앨범 표지로 썼다.

코미디언 '위어드 알' 얀코빅이 프린스의 음악을 패러디해도 되겠냐고 묻자 프린스는 그저 '안돼'라고 말한 것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로 하여금 알에게 매우 특이한 요구가 담긴 전보를 보내게 시켰다.

2013년 프린스는 '브랙퍼스트 캔 웨잇'(Breakfast Can Wait)를 발매하면서 2004년 자신을 패러디했던 코미디언 데이비드 샤펠의 사진을 커버로 썼다. 다음 해인 2015년 채펠이 지미 펄론의 '투나이트 쇼'에 등장해 해당 사진은 '프린스가 업어치기를 한 격'이라고 말했다. "누구든지 프린스를 가지고 농담을 하면 앨범 커버로 등장하게 될 거라고 알려준 거죠."

코미디언 위어드 알 얀코빅은 수차례 프린스를 패러디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한 바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허락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프린스가 또다시 업어치기를 시전했다. 아래는 얀코빅이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3. NBA의 스타의 집을 개조하다

프린스는 2004년 NBA 스타 카를로스 부저의 집에 머무르기 위해 8천만 원(70,000달러) 월세로 빌렸다. 그리고 월세로 살기 시작한 프린스는 월세로 사는 집을 개조했다.

ESPN에 한 말에 따르면 이렇다.

4. 마이클 잭슨과 듀엣을 하지 않은 이유

한 인터뷰에서 프린스에게 마이클 잭슨의 '배드'에서 듀엣을 할 뻔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프린스는 당시 '배드'에서 웨슬리 스나입스의 역할을 자신이 할 예정이었으나 이유가 있어서 관뒀다며 이렇게 답했다.

그래서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에게 '대체 누가 누구한테 불러주는 노래냐'고 물었다고 한다.

5. 프린스는 적어도 두 번 이상 제임스 브라운의 무대에 올라간 적이 있다

올라간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 무대에서 공연한 바 있다.

*본 기사는 허핑턴포스트 US의 '5 Stories You Didn’t Know About Prince'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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