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것

많은 이들이 애써 피하는 주제가 있다. '우리 원전은 안전한가?' 우리는 세월호, 메르스 대처에서 정부 재난관리능력의 한계를 보았다. 더구나 원전을 둘러싼 비리와 그 당연한 결과인 잦은 고장 및 정지 사태를 몇 년째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경우, 단 1기의 대형사고로도 전 국민이 방사능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미래의 몇 세대에까지 미칠 것이다.

2016-04-20     정광필
ⓒ연합뉴스

를 읽었다. 그 책에서 화재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소방관의 아내가 남편을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사산한 후 했던 말이 지금도 뇌리를 떠돈다. "내가 딸을 죽였다, 내가.... 딸이, 나를, 살렸다. 내 딸이 방사선을 모두 끌어모아 나를 살렸다. 나는 그 둘을 다 사랑했다. 사랑으로, 사랑으로 죽이는 게 가능한가?"

도쿄전력은 "일본 원전은 안전하다. 원전 위로 비행기가 떨어져도 끄떡없고, 가장 강력한 규모 8.0의 강진도 견뎌낼 수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후쿠시마의 원전 4기가 노후된 순서대로 폭발했다. 1년 뒤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1만5천여명이 사망하고, 47만명이 피난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대만 등이 탈핵을 결정하였다.

후쿠시마와 함께 '안전 일본'의 신화가 무너졌다. 우리는 세월호, 메르스 대처에서 정부 재난관리능력의 한계를 보았다. 더구나 원전을 둘러싼 비리와 그 당연한 결과인 잦은 고장 및 정지 사태를 몇 년째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의 경우, 단 1기의 대형사고로도 전 국민이 방사능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미래의 몇 세대에까지 미칠 것이다.

이에 전국 80여개 시민·환경 단체들로 구성된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탈핵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 덕분인지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탈핵 기본법 제정, 신규원전 건설 중단,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 등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원전을 고수하려는 세력이 워낙 막강하고,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이해도 높지 않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