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에 방치된 동물들 | 동물보호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

갈비뼈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마른 개들은 그래도 사람이 반가운지 남은 힘을 다해 꼬리를 쳤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굶어 죽은 개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살아있는 개들은 탈수로 안구가 함몰된 지경인데도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상 동물을 강제로 압수하거나 피난시킬 방도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지자체 공무원 역시 '소유자가 있는 개들을 피난 조치 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 다른 문제는 법에서 동물은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주인이 학대를 하더라도 함부로 소유권을 제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동물을 때려서 상해를 입혔더라도 벌금과 치료비만 내면 그 동물은 다시 동물학대범 소유가 된다.

2015-04-14     동물자유연대

안성 번식장에 방치된 아프간하운드. 탈수와 영양부족으로 안구가 함몰되어 있었다.

굶어죽은 개들과 뼈만 남은 개들이 뒤엉켜, 그야말로 '생지옥'

이웃 주민들은 개 주인이 가끔 와서 한 번에 죽은 개를 대여섯 마리씩 버리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입을 모았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개 주인은 '개를 번식해 파는 '분양' 사업을 시작했으나 경비가 많이 들어 사업을 접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는 와서 밥과 물을 챙겨주는데, 바빠서 지인에게 부탁했으나 갑자기 사정이 생겨 개들을 관리하지 못하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자신은 바빠서 금방 오지 못했단다. 그러면서도 갓 태어나 눈도 못 뜬 채 어미 젖을 빨고 있던 말라뮤트 새끼를 어미 품에서 야멸차게 떼어내 챙겨가기 바빴다. 저항할 힘조차도 없는 어미개는 영문도 모른 채 새끼를 뺏기고 안절부절했다.

사모예드가 죽은 사체와 함께 뜬장 안에 방치되어 있다.

'방치해 동물이 죽어야만' 학대라는 우리나라 동물보호법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도구, 약물을 사용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는 등 고의적인 행동이 동물의 몸에 직접적인 상해를 입혔을 경우만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안성의 개들처럼 동물을 방치하는 경우에는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동물 학대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사 직전의 동물이라도 숨이 붙어있다면 학대가 아닌 셈이다. 또한 '고의로'라는 조건은 해당 사건처럼 본인이 '굶겨 죽일 의도가 없었다'라고 하면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이 된다.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은 '(주인이) 동생이 사료를 충분히 주었다고 생각해 개들이 사망할 것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을 불기소 이유로 밝혔다. 2014년 12월 남양주에서 뜬장에 개를 방치해 굶겨 죽인 사건도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이런 법의 허점은 그냥 내버려두면 죽을 것이 뻔한 동물을 그나마 숨이 붙어있을 때 구조할 수 없게 발목을 잡는다.

방치되어 있던 개가 물을 마시는 모습

동물학대범에게서도 동물 빼앗지 못하는 동물보호법,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 수위도 문제다. 아무 이유 없이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할지라도 구형할 수 있는 최고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나마 2009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징역형이 생겼지만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6년 동안 한 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몇 십 만원, 죄가 아주 중한 경우 몇 백 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것으로 끝난다.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주에서 같은 동물 학대라고 할지라도 의도치 않게 발생한 학대부터 고의적이고 잔혹한 방법의 학대까지 수위를 나누어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처벌 수위도 일반적인 학대는 1-3년의 징역이지만 고의성이 강하고 죄질이 나쁜 경우에는 5년에서 10년의 징역이나 15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는 주도 있다.

'방치'도 '학대'로 규정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 이번에는 통과될까

이중 작년 5월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이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내용을 마련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신체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치 행위'를 학대로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 의원은 안성 사건이 SBS 동물농장에 방영된 것을 보고 발의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물을 굶겨서 집단 폐사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아사 직전의 살아있는 동물을 구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접하고 매우 안타까웠다.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행법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발의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발의안은 이번 4월 말 국회 법안심사소위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사실 국회가 열릴 때 마다 동물이나 환경 문제는 다른 '사람 먹고 사는 일' 처리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다음 회기로 넘어 가기 일쑤다. 하루빨리 동물보호법을 재정비해 동물 대상 범죄가 난무하는 사회적 현실에 맞는 수준으로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1965년 영국 정부가 농장동물에 대한 인도적 처우를 위해 제창한 '동물의 5대 자유'는 이제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동물복지의 기준이 되었다. '갈증과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두려움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 제3조에서도 '동물보호의 기본원칙'으로 선언적으로나마 명시되어 있다. 법의 기본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법, 숨이 붙어 있을 때 동물을 구할 수 있고, 동물학대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느낄 만한 벌칙이 있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진짜 '동물보호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 동물자유연대 정책국장 이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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