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삼성중은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2016-04-11     김병철
ⓒGettyimage/이매진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거대 조선소가 자리한 경남 거제시.

별천지로 불렸던 거제 분위기를 말해주는 이야기는 더 있다.

"가게만 열면 옷들이 날개 달린 듯 팔렸다."

대우조선이 위치한 거제시 장승포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대우조선 한 간부는 과거 좋았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랬던 거제 양대 조선소 임직원들 표정이 싹 바뀌었디. 회사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가 거론되고 딴나라 이야기로 들렸던 감원, 구조조정 이야기가 목전에 왔다. 일부 소리없이 진행되기도 했다.

최근엔 해양플랜트 부문의 추가 수주없인 임시직 중심으로 무려 2만명이 실직할 것이란 우려까지 노조가 제기해 거제 경제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세계 조선 시장이 호황을 누렸던 1990년대말 이후 양대 조선소에는 한 기당 1조원에 이르는 해양플랜트를 비롯해 각종 선박 수주가 잇따랐고 선박 인도일에 맞추기 위해 거제 외부에서 기술자들이 팀을 이뤄 속속 들어왔다.

조선소 한 간부는 "2012년까지는 거제 경기가 좋았다"면서 '옛날이 좋았다'를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거제에는 외국 명품 브랜드가 잇따라 들어왔다.

두 회사가 실적이 좋을 때에는 시도때도 없이 보너스를 직원들 손에 쥐어줬다.

그런 덕분인지 거제시는 다른 지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발전을 거듭했다.

연봉제 전환으로 퇴직금을 중간정산했을 때도 한꺼번에 수천억원의 현금이 근로자들에게 돌아갔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었던 거제에서 양사 근로자 및 협력업체 직원들은 땅을 매입하거나 아파트 등 부동산을 사들였다.

2006년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는 3만3천달러에서 이듬해와 2008년 4만달러선으로 올라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탓이었는지 2009년 1인당 GDRP는 잠시 3만4천달러선으로 추락했다.

이 때 경남도 1인당 GDRP 2만3천달러의 거의 배 수준이었다.

당연히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국내 1인당 GDRP의 배에 이르는 경제수준을 자랑했다.

그 이후에도 얼마간 거제지역 경기는 식을 줄 몰랐다.

소리없이 찾아온 불황

9일 밤 옥포 유흥가에서 만난 50대 한 경찰관은 "과거 밤시간 옥포 유흥가는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흥청망청했다"고 말했다.

네온사인은 더욱 화려해지고 자극적이 됐지만 유흥업소를 찾는 발걸음은 훨씬 뜸해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옥포에서 만난 40대 대우조선 직원은 "월급이 급격히 감소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전망 탓에 돈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거제시 고현동 야경

동네 분위기도 나빠지고 있다고 대우조선과 삼성중 직원들은 얘기한다.

올들어 거제지역 분위기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양사는 수조원대의 적자를 낸데다 그동안 집중적인 투자를 해 온 해양플랜트 사업이 흔들리고 있는 탓이다.

삼성중은 1조5천억원대의 적자를 회계장부에 남겼다.

그동안 양사가 심혈을 기울여 투자해 온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의 수주 잔고가 바닥을 향해가고 있지만 새로운 수주 협상은 진행되는 게 없다.

두 회사가 나란히 한 분기 내내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대우조선과 삼성중은 "하반기 해양플랜트들이 잇달아 선주들에게 인도되면 수주 잔량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며 "추가 수주가 없으면 내년부터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우조선이 9기, 삼성은 5기다.

이들 해양플랜트도 내년 중 모두 인도되고 추가 수주가 없는 한 해양플랜트 사업은 중단될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적어도 거제 조선경기는 당분간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반기부터 해양플랜트 물량이 빠지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근로자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라는 게 양사 노조 및 노동자협의회의 주장이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종 전체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침울한 거제

장승포의 이름난 한 음식점 사장은 "최근 손님이 뚝 떨어졌다"며 "거제는 물론 서울 등 외지인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외국 명품 판매점은 속속 간판을 내렸다.

지난해 우후죽순 식으로 분양됐던 유명 브랜드 아파트들은 '미분양'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제의 각종 경제지표는 여전히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고용률도 2010년 57.9%에서 2014년 63.2%로 높아졌다.

인구·음식점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일반음식점 역시 지난해 말 3천764개로 2014년말보다 10.5% 늘었다.

거제시 관계자는 "경제지표상으로는 여전히 거제 경기가 종전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양대 조선소들이 추가 수주를 하지 못하고 수주 잔량이 줄어든다면 경제지표도 나쁜 쪽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 옛날이여"란 탄성이 잇따르는 거제에서 전 분야에 걸친 구조조정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