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과 권력 그리고 미디어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기존의 검토돼 왔던 이중처벌 규정에 존폐 문제를 토의하는 대신, 위원장이 "특정인을 위해 규정을 개정한 게 옳은지 그른지"를 물어봅니다. 4월6일 저녁 6시쯤 이뤄진 이 '디스커션'에는 아무런 결정력이 없습니다. 한 위원은 "개인 의견을 묻는 것이라면 속기할 필요도 없다고 해 속기를 하지 말자고 했다. 아마 속기록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원 중의 한 명인 김앤장의 제프리 디 존스 변호사도 "우리는 그런 사항을 결정하도록 요구받지 않았다. 또 그런 결정에 대한 책임도 없다. 위원장이 각자의 의견을 물어서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알고 모두 자리를 떴습니다. 이날 밤 연합뉴스에는 '박태환 올림픽 출전 못한다. 대표선발 규정 개정 않기로'라는 기사가 뜹니다. 위원들 개인의 생각은 한 미디어에서 '(공식) 결정'이 되고, 그 결정으로 인해 이중처벌 논란의 규정은 개정될 수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이뤄지고, 그래서 박태환은 올림픽에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2016-04-09     김창금
ⓒASSOCIATED PRESS

박태환이 대표팀에 발탁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의 의사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은 박태환에 대한 대한체육회의 공식결정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박태환이 대중들로부터 대표팀에 발탁될 수 없다고 인식하도록 만든 현재의 비정상적 상황을 해명할 출발점입니다. 저는 여기서 박태환이 올림픽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을, 그것도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을 꼼수와 언론 플레이로 한 순간에 절명시키는 폭력을 고발하고자 합니다. 철저히 형식에 관한 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가 권력과 미디어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법제상벌위원회 역할을 하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이 문제를 심의하게 됩니다. 변호사와 법학교수, 대학교수 등 10명으로 구성된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고민을 하겠죠. 이미 1년6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받아 죄값을 치른 박태환한테 또 다시 3년간 대표팀 자격 박탈을 명시한 5조6항은 이중처벌 논란의 대상입니다. IOC나 국제반도핑기구 등에서는 이중징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대한체육회는 이것을 개정해야 하는지 여부를 검토해왔습니다.

이날 밤 연합뉴스에는 '박태환 올림픽 출전 못한다. 대표선발 규정 개정 않기로'라는 기사가 뜹니다. 위원들 개인의 생각은 한 미디어에서 '(공식) 결정'이 되고, 그 결정으로 인해 이중처벌 논란의 규정은 개정될 수가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이뤄지고, 그래서 박태환은 올림픽에 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제프리 디 존스 변호사의 얘기를 더 들어보면 명확해집니다. 그는 "박태환 관련 결정이 공식적인 것인가, 비공식적인 것인가?"라는 저의 질문에, "공식과 비공식의 차이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제가 "공식 결정은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것이고, 두드리지 않으면 의결되지 않는 비공식으로 본다"고 하자, 존스 변호사는 "그렇다면 비공식이다.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린 적은 없다. 그것은 구속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2014년 아시안게임 당시의 박태환. ©위키피디아

그런데 스포츠 판에서 이런 메카니즘을 활용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사람들을 인식하게 만드는 그 음험한 메카니즘을 이용하는 세력은 누구일까요?

그런데 문체부의 체육회 통합 추진 과정에서도 저는 언론 플레이로 의심받을 만한 여러 건을 목도한 바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속속들이 취재를 해보면 문체부의 미디어 활용은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제 핸드폰에도 체육정책관이 보내온 문자들이 있는데, 대한체육회 사람들이 미디어에 소스(정보)를 흘려서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글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식으로 문자를 보낸 체육정책관과 달리 저는 단 한번도 대한체육회 쪽으로부터 소스를 흘려받은 적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들 라인은 박태환이 대표팀에 복귀하는 것을 썩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강조한 게 4대악 척결이라 해서 체육계의 부패를 도려내는 것이 포함돼 있습니다. 또 원칙을 강조하는 것도 이 정부이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문체부 핵심라인은 이런 정책 기조에 매우 충실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들의 세계관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스포츠 현장, 스포츠 이면의 애환, 스포츠인들의 정서는 전혀 감도 못잡고 있습니다. 마케팅이나 산업을 강조하지만 그것도 현대 스포츠 여러 부문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래서 정책추진 과정에서 독선적이라거나 돌쇠형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더욱이 스포츠계가 목소리 한번 제대로 결집해 낼 수 없는 취약한 집단이어서 권력이 타깃으로 삼거나 그때그때 활용하기에는 딱 좋습니다. 이런 가운데 박태환 건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발휘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마침 공정위원회 위원장이 위원들에게 박태환 건에 대한 사견을 물어보고, 그 사실이 보고 라인으로 올라오고, 그것이 누군가를 통해 특정 미디어에 노출되고, 곡해된 정보가 다음날 기정사실처럼 되면서 박태환은 퇴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흐뭇해 할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때문에 박태환 문제가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정식 안건도 아닌 기타 안건으로, 그것도 개인의 의견을 물은 뒤 마치 결정된 사항처럼 미디어에 의해 유통되면서 결국 한 사람을 코너에 몰고 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건강한 토론과 소통을 통해 걸러질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한번 더 기회를 주자는 주장이 득세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공정위원회의 한 위원은 이번 사안을 취재하는 기자한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정말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다." 또 다른 위원은 아예 "전화를 받기 어렵다"며 끊었습니다. 공정위원회가 뭐가 떳떳하지 못해 그런 걸까요. '페어니스'(Fairness)라는 이름의 공정위원회도 권력과 미디어, 그 틈새에서 헤매는 것은 아닐까요. 한 인물을 퇴장시킬 때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