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연대론의 숨은그림

지지층의 분노를 반복해서 보여주면 야당들이, 야당 후보들이 무서워서라도 결국엔 손 맞잡지 않겠느냐는 기대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비현실적입니다. 연대의 대의는 정치적 등가교환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정치적 등가교환은 협상 테이블 위에서 시도됩니다. 아울러 교환되는 정치적 가치는 유권자의 지지를 뼈대로 하는 것이며, 이런 지지는 거리에서 형성됩니다.

2016-03-29     시사통 김종배입니다
ⓒGettyimage/이매진스

야권연대론엔 심각한 우려가 깔린 듯합니다. 이렇게 가다간 야권이 공멸한다는 심각한 우려요. 헌데 정말 그럴까요? 울면서 즐기는 경우도 있는 것 아닐까요? 오히려 심각히 우려해야 하는 건 바로 이것, 울면서 즐기는 '숨은그림' 아닐까요?

야권연대는 선거 승리 전망이 높을수록 탄력을 받는 법이고, 여권 심판 의지가 높을수록 필요가 증가하는 법입니다. 야권연대는 낙관과 분노를 자양분 삼아 자기 증식하는 정치 생물 같은 것입니다.

왜 야권 진영이 아닌 곳에서, 야권에 각을 세워온 세력이 야권연대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더 많은 얘기를 쏟아내는지 그 이유를 헤아릴 만합니다. 야권연대가 성사될까봐 경계하는 이유 못잖게 염증과 낙담의 정서를 야권 지지층에 유포하기 위함일 겁니다. 설령 야권연대가 성사된다 해도 결과의 감동보다 과정의 짜증을 더욱 키움으로써 그 효과를 반감시키기 위함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비현실적입니다. 연대의 대의는 정치적 등가교환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정치적 등가교환은 협상 테이블 위에서 시도됩니다. 아울러 교환되는 정치적 가치는 유권자의 지지를 뼈대로 하는 것이며, 이런 지지는 거리에서 형성됩니다.

관권은 유권자입니다. 유권자가 저 멀리 있는 정권보다 내 옆에 있는 이웃을 더 미워한다면 동력은 나오지 않습니다. 정권 심판을 야권연대의 대전제 삼아 목 터져라 외쳐봤자 목만 쉴 뿐입니다. 밉상 이웃보다 폭주 정권에 대한 분노의 연대가 거리에서, 유권자 맘속에서 우선 형성되지 않는 한 야권연대는 추동되지 않습니다.

* 이 글은 <시사통 김종배입니다>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