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론조사 공화국이 되었나

사실 우리 사회의 여론조사에 대한 과도한 활용에는 문제가 많다. 여론조사 결과는 논의의 시작을 위한 참고자료가 되어야 한다. 대중이 늘 옳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 여론조사 결과는 논의의 종결을 위해 주로 사용된다. '여론이 이러니 더 이상 다른 말 하지말라'는 침묵강요용으로 쓰이고 있다.

2016-03-18     윤희웅
ⓒGettyimage/이매진스

우리 사회에 공적 신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배제된 상태에서의 의사결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신이 팽배한 사회가 되면서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공적 조직의 의사결정이 대중적 수용성을 갖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불투명한 의사결정이 빈번하니 여론조사가 문제 많지만 어쩔 수 없이 활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정당에서 여론조사를 하는 것도 유권자들이 정당의 결정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불신 기류가 팽배한데 정치 불신은 정당에 대한 불신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정당은 권력 획득을 위한 조직이기 때문에 권력적 속성이 근원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정당 내부 권력에 대한 독점성, 확장성, 배타성이라는 속성이 조직 전체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니 정당 내부의 결정은 필연적으로 공정하기 어렵다. 대중은 물론이고 내부 구성원도 정당의 결정을 못 믿는 일이 빈번하다. 이렇게 정당 내에서도 불신이 강하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여론조사는 대개 찬성과 반대의 형태로 설계되어 실시된다. 찬성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우려할 수 있고, 반대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필요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찬반의 선택지는 중간지대를 없앤다. 어느 한쪽만을 선택해야 한다. 무응답이 있지만 해석에서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립을 오히려 키운다. 건전한 중립지대는 없어지고 사회는 균열을 강화한다. 우리 사회를 더욱 양극단으로 몰아간다. 국민 뜻을 반영하려는 여론조사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협소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야기하는 것이다.

여론조사 의존사회를 막으려면 먼저 공적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공적 기관의 결정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충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의혹을 남겨서는 안된다. 귀찮은 일이겠지만 아주 사소한 결정도 투명하게, 공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반복해야 한다. 아주 먼 길이겠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은 신뢰를 쌓는 일에도 적합한 표현이다. 공적 신뢰가 없으면 여론조사 의존사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