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이식이 만들어 줄 현실기보 | 알파고 대국 후 단상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충격에 대하여, 누군가는 "알파고가 승리하더라도 이는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달래며 이야기한다. 글쎄다. 그런데 위로하는 그 말이 실은 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다.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은 우샤인 볼트처럼/만큼 빨리 달릴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고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지 않은가. 또 누군가는 말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게임을 잘 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2016-03-16     김상순
ⓒ연합뉴스

1.

그간 인간의 바둑은 삼라만상과 희노애락을 가로 세로 19줄의 공간에 담은 현기(玄機)어린 경기였다. 알파고(AlphaGo)라는 종(種)의 바둑이 인간 종의 바둑 속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신수(新手)에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결국 알파고의 승리결과에 감염되었다. '인공지능의 도전'은 '인공지능에의 도전'으로 끝났다. 1주일 동안 많은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도 앞으로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마음의 준비를 했고 한편으로 새로운 종(種)의 접근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꼈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충격에 대하여, 누군가는 "알파고가 승리하더라도 이는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달래며 이야기한다. 글쎄다. 그런데 위로하는 그 말이 실은 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다.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은 우샤인 볼트처럼/만큼 빨리 달릴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고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지 않은가. 또 누군가는 말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게임을 잘 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역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이 범용(凡用)이 될 수 있어서 더 무섭다. 알파고는 삼라만상을 담을 수 있는 바둑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세상을 분석해낼 수 있겠다고 나는 느꼈다.

2.

미국의 인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나 '웨스트 윙'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갈등의 축과 주요 변수들을 바둑으로 치환(置換)하여 볼 수 있다. '법안 통과에 비토(veto)하지 않기', '정적(政敵) 제거 위해 세무조사 하기', '반대파 의원 불륜 스캔들 폭로하기' 등의 현실 정치 세계의 이슈는 '바꿔치기', '어깨 짚기', '치중(置重)하기', '역 끝내기', '사석(捨石) 작전' 등의 바둑판의 상황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생각을 이어서, 정치를 바둑으로 시뮬레이션해서 이를 현실정치에 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굳이 드라마가 아니라도 현실 세계의 옛 정치면 기사들을 모조리 스크랩해서 분석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의원 한 명 한 명을 바둑 돌 하나로 만들어 국회(國會)라는 이름의 한 판의 여야(與野) 바둑을 둘 수 있다. 의원(議員) 한 점의 행마는 각 지역구라는 또 다른 한 판의 바둑에 등장하는 후원회나 지역 민심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소셜미디어를 포함하여 온라인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생각의 파편들은, 민심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이터가 된다. 지역구라는 한 판의 바둑이 의원 한 점(點)을 만들고, 의원 한 점은 다시 국회라는 한 판의 바둑을 만든다.

# 알파고 대국 전(前)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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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