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와 그가 남긴 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시인 윤동주의 현실인식이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다. 자신이 세상을 바꾼다고도 믿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의 평생의 벗 송몽규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고작 자기 안에서 타오르는 시를 적었다.

2016-03-14     남궁인

1.

2.

그리고, 며칠 전에 시인과 술을 마시다가, 술자리에서 갑자기 윤동주의 시를 낭송하기로 했다. 그는 <자화상>을 골랐고, 나는 주저 없이 <별 헤는 밤>을 골랐다. 이 시를 중학교 1학년 때, 직접 월광 소나타를 연주해 녹음한 테이프를 들고 가서 틀어놓고 암송한 기억이 있다. 그 전문이다.

별헤는 밤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시와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 시는 윤동주의 남겨진 시 중에 가장 길다. 이 긴 과정에서의 기승전결은 완벽하다. 별을 헤던 청년은 세 번째 연에서 자기의 내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시작되는 감정의 고조. 동일한 시구의 반복과 평서문의 나열로 시의 구조를 파괴하는 서술. 이러한 기법의 문학적이고, 미적임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긴 서술에도 시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패, 경, 옥, 강아지, 토끼, 노새... 평범한 단어 하나하나가 영원히도 슬프다. 시인은 그 와중 허튼 음소 하나조차 발음하지 않는다. 시를 노래하는 그와, 시 안에서 무엇인가를 불러보는 그가 대비된다. 그 간극에서 그의 말소리가 분명히 들려온다.

나는 그 뒤의 술자리에서는 울음을 참고, 그간 외웠던 윤동주의 시구를 머릿속에서 뒤적거릴 뿐이었다.

3.

그래서 일본군 간수가 시구를 해석해서 들이밀 때 그의 난감한 표정을 나는 엿보았다. 그는 써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들끓는 글귀를 꼭 받아 적어야 했다. 하지만, 쓰면 죽는다. 이런 일이 닥쳐와 내 목에 칼을 들이댈 것이다. 그래도 쓴다. 어차피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었다. *****잃어버렸던, 내 의지로 탄생한 가장 아름다운 부끄러움을 적어야 한다.

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다.) 영화는 그것을 의도한다. 마지막에 죽음을 직감한 그는 이런 방식으로 말한다. '그렇소. 나는 그림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허나 나는 그것을 스스로 적었소. 무엇이든 나는 부끄러우니 기꺼이 죽겠소. 하지만 이것은 나의 의지로 행해진 것이니, 당신들의 의지대로 여기 씌여진 것을 인정하지 않겠소. 다만, 나는 죽겠소.'

4.

나는 급히 서재를 뒤져 시집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온 집에 미약한 불 하나만 밝히고, 게걸스럽게 처음부터 낭송해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을 바깥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울먹이며 발음되는 그의 시구가 어둠의 허공 사이로 뱉어졌다. 방 안이 소슬해졌고, 그것이 꼭 남의 나라의 육첩방 같았고, 별은 바람에 스치우기 시작했다.******** 그렇다. 어떠한 감동도 문학 그 자체를 뛰어넘는 것은 없었다. 내 이입의 얕음은 거기 있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남긴 시를 직접 맞닥뜨리는 일에서만,

**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 : 윤동주, 별헤는 밤, 전문

****** : 윤동주, 돌아와 보는 밤

******** : 윤동주, 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