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사심을 강요하는 사회

애사심의 강요는 다른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원 1인당 몇 개씩 판매하라는 식이다. 보험 가입, 은행이나 증권사의 계좌 개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업종에 따라 TV나 냉장고가 떨어질 때도 있다. 결국 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울 리 없다. 하여 일부는 그냥 자기 돈으로 할당량만큼 구입해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중고시장에 내다 판다. 그러면 이런 행태가 애사심과 주인의식으로 포장된다.

2016-03-07     홍형진
ⓒGettyimage/이매진스

굴지의 대기업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실화를 보자. 해당 기업은 지난해 3분기에 매우 큰 영업손실을 기록해 완전자본잠식에 빠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한데 이 과정에서 모든 직원에게 우리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언론에 따르면 1년차 신입사원은 1630만 원, 10년차 과장급은 4840만 원, 팀장급은 7000만 원대, 임원은 1억 원 언저리다. 이 정도의 현금을 보유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에 상당수의 직원이 대출을 받느라 추가로 이자비용까지 부담한 상황이다.

그 기업에서 일하는 이를 통해 내부 분위기를 들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적지 않은 직원이 회사를 옮길 궁리를 하고 있지만 경기 둔화로 그조차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는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자는 기조 아래 우리사주 매입을 요구하고 근무시간을 대폭 늘렸다. 우리사주를 잔뜩 매입해서 애사심을 보여주든가, 아니면 알아서 나가라는 식이다. 직원들은 반쯤 체념한 상태에서 구조조정 풍문에 귀 기울이며 벌벌 떨 뿐이다.

어쩔 수 없이, 그러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회사를 사랑하고 자신의 것인 양 아껴야 하는 참으로 이상한 사회다. '사랑'과 '아끼다'는 두 단어의 정의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계약된 시간 동안 계약된 노동력만 회사에 제공하면 직원의 도리는 충분히 다한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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