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으로서의 평화

중국이 평화협정을 꺼내들었다. 북한의 주장을 받아 중국이 움직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다. 갈 길이 멀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강대국들끼리 평화협정을 맺으면 어떡하나,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 우선 평화협정에 대한 오해부터 바로잡자. 중동평화협상을 봐라. 1978년 캠프데이비드에서, 1993년 오슬로에서 평화협정이 두 번이나 맺어지고 그때마다 노벨평화상 잔치가 벌어졌다. 평화는 오지 않았다.

2016-03-07     김연철

중국이 평화협정을 꺼내들었다. 북한의 주장을 받아 중국이 움직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다. 갈 길이 멀다. 그런데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강대국들끼리 평화협정을 맺으면 어떡하나,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 우선 평화협정에 대한 오해부터 바로잡자. 중동평화협상을 봐라. 1978년 캠프데이비드에서, 1993년 오슬로에서 평화협정이 두 번이나 맺어지고 그때마다 노벨평화상 잔치가 벌어졌다. 평화는 오지 않았다. 법적인 평화는 잠정적인 약속일 뿐이다. 사실상의 평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협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피로 얼룩진 평화협정의 사례는 적지 않다.

당사자 문제를 둘러싼 오해도 마찬가지다. 평화협정이든 평화체제든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원한다. 남북관계 악화를 반영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없는 낡고 상투적인 선전이기도 하다. 남한은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는 아니지만 전쟁 당사자이고, 평화체제의 실질 당사자이며 평화협정의 주체다. 당사자 문제는 이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했고,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실현되었고, 2007년 10·4 선언에서 재확인되었다. 남한을 뺀 평화체제 논의는 실현가능성이 없다.

다시 군사훈련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는 평화라는 말이 더욱 실감날 것이다. 몇 년째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은 봄을 맞으면서 우리는 단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만 해야 하는가? 이 봄이 무사히 지나면 주변국들은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무능으로 자신의 운명을 주변국에 맡긴 부끄러운 역사를 한 번 더 겪을 것이다.

통일이 과정이듯이 평화도 과정이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화해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교류하지 않고 어떻게 증오를 녹일 수 있을까? 평화는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주변국이 줄 수 있는 선물도 아니다. 평화가 사라진 계절,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에게 들려줄 성경 구절이 있다. '평화를 만드는 자, 복이 있나니.'

한국과 미국 양국이 사상 최대 규모의 키리졸브(KR)·독수리(FE) 연합훈련을 개시한 7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 F-16 전투기가 작전을 마치고 착륙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