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우리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비슷하게 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이 하는 여행 코스에 사람만 바뀐 것이다. 가령 오늘날 가장 흔한 문학양식이 여행기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직업 작가가 아닌 일반인이 각종 SNS에 쓰는 글의 상당수가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여행기(리뷰 등)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다. 출발 전 정보 공유 및 수집, 그곳에서의 여흥거리, 면세품 쇼핑, 먹을거리 등.

2016-03-04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합뉴스

글 | 서광진 박사

따라서 '더 멀리 갈수록 더 많이 보게 되고 더 많이 알게 된다'라는 명제는 중세의 세계관과 무관한, 즉 새로운 시기의 여행 모토였다. 르네상스 이후에서야 이 명제는 지식과 교육에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이 시기는 중세 말기, 신에서 인간에게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 강력한 세계관으로 자리 잡는 때였다. 신의 영혼이 아닌 인간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천국의 지도가 아니라 지상의 지도에 대한 관심이 세계관의 저변에 침투해 자리 잡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이념형에 가까웠던 중세의 T-O형 세계 지도는 실측에 기반 한 세계 지도로 바뀌고 있었고, 전문 '탐험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영국이었다. 이른바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탄생이었다. 가장 좁은 의미의 그랜드 투어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했다. 첫째, 영국의 젊은 남자 귀족 혹은 젠트리가 여행 주체이다. 둘째, 전체 여행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동행 교사가 있다. 셋째, 로마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 여행 스케줄이 있다. 넷째, 평균 2-3년에 이르는 장기 여행이다.

British Gentleman in Rome, c.1750

러시아에서도 여행이 유행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 양상은 영국의 경우와는 달랐다. 영국에서는 귀족들이 자국의 교육 환경에 불만을 품고 스스로 여행에 나섰다면, 러시아에서는 황제, 즉 국가가 직접 여행을 장려하였다. '그랜드 투어'의 가장 열성적 지지자이자 이로 인해 그 자신이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인물이 다름 아닌 러시아 근대화의 아버지인 표트르 1세였기 때문이다. 그는 황태자 시절부터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울 만한 여행을 수차례 감행하였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을 수년간 수차례 자신의 수행원(교사)들과 여행하면서 직접 보고 배웠다. 그리고 그 결과 위로부터의 근대적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후 황제가 된 표트르는 유망한 젊은이들을 유럽으로 유학 보냈다. 일종의 국비유학이었다.

칸트의 말처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 취미판단 혹은 판단력(미학)의 근대적 기반이라면,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근대적' 여행은 18세기 이후에야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목적 없는 여행(출장이 아니라!)을 통해 우리의 삶은 매일 새로워지고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 여행기(리뷰 등)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다. 출발 전 정보 공유 및 수집, 그곳에서의 여흥거리, 면세품 쇼핑, 먹을거리 등. 나아가 느끼는 감정이나 수사도 비슷해지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어느새 개성과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내가 속해 있는 사회를 확인하기 위해(혹은 다른 사회로 편입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여행을 통해 과거의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재확인할 뿐이다. 매우 개인화되었다고 생각하는(혹은 비판받는)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똑같은 여행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역설 앞에 놓여 있다.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