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보다 '노장'이 되고 싶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감독으로 살아남기 위해 꼭 '거장'이 돼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느 분야의 '최고'만이 살아남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곳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난 스페인 감독 헤스 프랑코는 82년 간 250여편 이상의 영화를 감독, 제작했다. <뱀파이어 킬러 바비>, <백인 식인종 여왕> 등 제목만으로도 그 허접함이 느껴질만한 시(C)급 영화들을 평생 만들어왔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한 해 동안에도 네 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현실적으로 나 같은 감독이 부러워야 할 대상은 임권택 감독이나 폴란스키가 아니라 프랑코다. 거장이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영화만 만들면서 살 수 있다면.

2015-04-08     조원희

는 연극적 설정과 회화적 미장센이 심도 깊은 내부적 서사를 발현하는 작품이었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걸작 <나는 집으로 간다>는 그의 나이 93살에 발표됐다.

를 내놓은 로만 폴란스키는 82살. 상업영화 필드의 질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최고의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85살이다. 그들을 쉽게 부러워할 수 있을까. 고다르나 폴란스키는 일찍이 현대 영화의 기법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스트우드는 아직도 전성기다. '거장'이 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 마찬가지다. 삶의 역동성과 죽음의 허망함을 젊음과 욕망이라는 매우 원초적인 감정을 통해 스크린 위에 투영했다. 현재형의 영화들과 그 양식적 차이가 일부 존재하는데, 그것마저 반갑다. 거장다움이 느껴지는 영화다.

, <백인 식인종 여왕> 등 제목만으로도 그 허접함이 느껴질만한 시(C)급 영화들을 평생 만들어왔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한 해 동안에도 네 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현실적으로 나 같은 감독이 부러워야 할 대상은 임권택 감독이나 폴란스키가 아니라 프랑코다. 거장이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영화만 만들면서 살 수 있다면. 감독들이 너무 조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거장이 되겠다는 것보다 더 큰 욕심처럼 느껴진다.

2009년 2월 1일 스페인 영화감독 헤스 프랑코가 부인과 함께 마드리드에서 열린 고야필름페스티벌에 입장하고 있다. 그는 이날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