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을 만든(?) 사나이

정치가와 군인으로서 널리 이름을 떨치느라 무척 바빴을(덧붙여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및 심지어 자신을 암살한 브루투스의 엄마 세르빌리아까지 숱한 여인들과의 염문까지 뿌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정확한 역법을 만들어 작은 수정만 거쳐 후대에까지 널리 쓰이게 만들었을까? 마침 오늘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역법 개혁 덕에 생긴 날인 2월 29일이니, 이 유명한 고대 로마의 영웅이 문자 그대로 '시간을 달리는 카이사르'(웃음)가 되었던 경위를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2016-02-29     바베르크

율리우스 카이스르가 만든 율리우스력은 별 불편 없이 1600년 넘게 널리 쓰이다가, 1582년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이를 약간 개정한 그레고리력으로 바꾸었다.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의 윤년 중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에서 제외하되, 그 중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그대로 윤년으로 두는 방식으로, 즉 예컨대, 2100년, 2200년은 윤년에 해당하지 않지만, 2000년과 2400년은 윤년이 되는 방식으로, 율리우스력이 1600여년 쓰이다가 생긴 오류를 바로잡았다. 다시 말해,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을 아주 약간만 수정한 것으로, 율리우스력은 2000년도 훨씬 전에 만들었지만 상당히 정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치가와 군인으로서 널리 이름을 떨치느라 무척 바빴을(덧붙여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및 심지어 자신을 암살한 브루투스의 엄마 세르빌리아까지 숱한 여인들과의 염문까지 뿌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떻게 하여 이렇게 정확한 역법을 만들어 작은 수정만 거쳐 후대에까지 널리 쓰이게 만들었을까? 마침 오늘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역법 개혁 덕에 생긴 날인 2월 29일이니, 이 유명한 고대 로마의 영웅이 문자 그대로 '시간을 달리는 카이사르'(웃음)가 되었던 경위를 한번 살펴 보기로 하자.

그러나, 카이사르의 정치적, 개인적 운세는 이베리아 반도 속주 총독직을 마치고 돌아오면서부터 트이기 시작한다. 그는 무력을 갖춘 폼페이우스와 당시 로마 최대의 재력가인 크랏수스를 설득하여 원로원 체제에 대응하는 3두 정치 체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자신도 폼페이우스와 같은 군사적 업적을 쌓기 위해 갈리아 총독으로 자원하여 드디어 8년 간에 걸친 갈리아 원정에 나선다. 갈리아는 지금의 프랑스, 서부 독일, 스위스,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을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그때까지는 로마의 판도 안에 들어가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현실적이며 합리적이고 영리한 정치인이자 탁월한 군인이었던 카이사르는 갈리아 총독의 임기를 마치고, 자신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로마 원로원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 공화정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이태리로 진격하면서도 아마도 실제 계절에 맞추어 병력을 이동시켰던 것 같은 느낌적 느낌. 특히 이제 원로원파와 손을 잡고 그의 노골적인 적수가 된 폼페이우스가 본국 이태리를 탈출해 그리스로 달아났을 때, 당시의 달력으로는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가을이라 생각해서인지 폼페이우스를 쫓아 병력을 모아 이태리의 브룬디시움에서 그리스로 건너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로마의 내전은 이로써 사실상 끝났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막간극으로 이집트 왕위계승전에 말려든다. 다들 아시다시피 여기서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처음 만나게 되고 애인 사이가 된 그녀를 지원하여 그녀의 남동생인 소년왕 프톨레마이오스를 몰아낸다. 그러고 나서 갈리아 정복전과 폼페이우스와의 내전 후에 거의 처음으로 카이사르는 새로 얻은 애인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모처럼만의 일종의 휴가를 만끽하게 된다. 사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후손인 그리스계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당대 최고의 교양을 갖추었기에 카이사르의 말동무가 되어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나일강을 유람하며 이 불세출의 영웅 카이사르의 말동무가 되었고, 심지어 카이사르의 일점 혈육인 카이사리온까지 낳게 된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이집트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로마의 일인자로 이태리 본국에 복귀한 다음 드디어 역법 개정에 착수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나중에 율리우스력이라고 불리는 역법을 완성하는데 드디어 성공하고(기원전 46년), 이해에는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3개월 정도를 더 늘렸고, 앞에서 썼듯이, 앞으로는 2월 23일과 24일 사이에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방식의 윤년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도 있고, 예컨대 나폴레옹처럼 프랑스대혁명이 없었으면 나타날 수 없던 영웅도 있었고, 때를 잘못 만난 영웅이라는 말을 듣는 임진왜란 때의 호남 의병장 김덕령 장군 같은 분도 있지만, 동서고금의 영웅들 중에서 아예 자신이 시대 아니 계절, 달력 자체를 만들었던 영웅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