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 조은비, 그리고 섹스 마케팅

조은비와 설현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성 상품이 옳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주류가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미디어계가 유난히 천박해서 그런 건 아니다. 회사를 한 번 둘러보자. '예뻐서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준다'는 칭찬과 '여성이 타오는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버젓이 들린다. 남자들이 모인 수다자리에서 여성에 대한 품평은 일상적이고 노골적이다. 물론 젊고 예쁜 여성에만 한정해서다.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

2016-02-23     백승호

성적으로만 소비되는 정치상품, 조은비

"별풍선주랴?"

얼마 전 직썰에 발행된 아이엠피터님의 글(http://www.ziksir.com/ziksir/view/2987)에 달린 댓글이다. 우리는 웬만하면 댓글을 지우지 않지만 이 댓글들은 바로 삭제했다. 이건 어떤 사안에 대한 '이견'도 아니었다. 이해해줄 수 있는 수준의 분풀이도 아니었다.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나온 썩 유능하지 않은 여성 후보'였던 조은비는 여러가지 합리적인 비판이 가능한 맥락이 제외된 채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 받았다.

나는 이 글을 편집하고 난 뒤 썸네일을 만들며 일종의 개인적인 시위로서 그녀의 얼굴을 물음표로 가렸다. 여자인 것을 보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상품으로서의 조은비를 성 상품으로 소비하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조은비는 성 상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는 무능하다고 비판 받을 수 있었고, 자질이 없다고 조롱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토론장을 박차고 나간 대가'로 '민주,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의 키보드에 의해서 먹은 욕이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SKT가 설현을 소비하는 방식

좌-설현, 우-데이비드 간디

남자의 성도 팔리고 있잖아

그래서 내가 앞서 말했던 '나는 성 상품화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다분히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에 그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주체적으로 성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모두에게 같은 조건이 갖춰졌을 때나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성 상품화가 다분히 자본주의의 천한 모습이라는 비판, 그리고 성 상품화는 남녀 모두에 금지되어야 한단 양비론적 의견을 덧대기 이전에 과연 성 상품화의 자발성이 남녀 모두에게 공평한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콘 같은 코미디 프로에서도 성 상품은 노골적으로 팔린다. 다만 판매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후진 상품'을 전시하고 이를 조롱한다. 그리고 그 옆에 '그나마 괜찮은 상품'을 같이 전시한다. 외모품평은 쉴새 없이 이뤄지며 이를 감내하거나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 개그포인트로서 소비된다. 이에 대한 돌연변이로서 김숙이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임을 상기해보자.

은 못친소 특집을 방영했다. 그리고 여기에 여자는 없었다. 제작진의 속내를 너그러이 판단하자면 아마도 '열등한 성 상품으로서의 여성'을 세워두고 거기에 '남성 출연자들이 품평하는 그림'이 옳지 못하단 판단을 했을 것 같다. 이것이 한국 미디어들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성 상품으로 활용하든가, 그 비판이 무서우면 그냥 '배제'하든가. 후자가 조금 더 진보적인 방식이란 게 더욱더 슬픈 사실이다.

성 상품화를 피할 수 있는 '여성'은 얼마나 되는가?

조은비와 설현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성 상품이 옳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주류가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미디어계가 유난히 천박해서 그런 건 아니다. 회사를 한 번 둘러보자. '예뻐서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준다'는 칭찬과 '여성이 타오는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버젓이 들린다. 남자들이 모인 수다자리에서 여성에 대한 품평은 일상적이고 노골적이다. 물론 젊고 예쁜 여성에만 한정해서다.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여성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여성과 남성 모두 주체적으로 성 상품이 될 수 있는 세상은 아마 오지 않을 거다. 나는 앞으로도 여성혐오가 '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 할 뿐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쪽으로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끝내 '평평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너무 흔하고 평범해서 비관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화가 난다. '매춘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 해왔다'며 본인의 성 구매를 정당화 하기 전에, 왜 성 노동 제공자는 왜 여자뿐인지를 고민하면 쉽게 나올 답 아닌가? 이 질문에는 또 '호빠'가 있으니 '공평하다'고 대답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