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등록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학교 실습실에 있는 장비는 6mm SD급 비디오 카메라였다.

2016-02-23     권성민
ⓒGettyimage/이매진스

"여대라니 부럽다"라는 농은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기를 버릇했지만, 혼자 앉아서 작업할 일이 대부분인 생활 중에 스무 살 새내기들이 영상과 씨름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꽤 즐거운 활력소이긴 했다. 한 학기 내내 한 번의 결석도 과제누락도 없이 매시간 반짝이는 수십 개의 눈동자 앞에 서는 것도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공부를 좋아했던 나도 1학년 때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혹자는 여대에 출강한 젊은 남자 강사가 누리는 특수상황이라 말했지만, 제작실습을 향한 학생들의 열렬한 탐구열을 그런 소녀 마음 정도로 깎아내리진 않으련다.

▲ 영상시장 대부분이 디지털 장비로 전환되고 몸집이 커서 느린 방송사까지도 테입리스(tapeless) 시스템이 정착되어가는 마당에, 학교 실습실에 있는 장비는 8mm SD급 비디오 카메라였다. ⓒpixabay

문제는 정작 학교에서 제공하는 실습 장비가 스마트폰보다는 조그셔틀 세대에 가깝다는 거다. 이미 영상시장 대부분이 디지털 장비로 전환되고 몸집이 커서 느린 방송사까지도 테입리스(tapeless) 시스템이 정착되어가는 마당에, 학교 실습실에 있는 장비는 6mm SD급 비디오 카메라였다. 최소한 지각을 가지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HD 영상이었을 학생들에게 아이폰 카메라 화질만도 못한 장비를 쥐어주고 영상을 찍으라고 하자니 성에 안차는 건 물론이거니와 더 심각한 건 이 친구들, 테이프라는 걸 써본 적이 없는 세대다. 연필과 카세트테이프의 연관성을 추론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그 사람의 세대를 알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음반을 CD로 만났던 이들은 카세트테이프 구멍에 연필을 끼워넣고 뱅글뱅글 돌리는 '수동 되감기'를 떠올릴 재간은 없으니까. 심지어 이 96년생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MP3를 듣던 세대다. 동네에 비디오가게가 자취를 감출 즈음이었고, 잠시 반짝했던 DVD를 지나 동영상 파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처음부터 익숙했던 세대. 태어나 비디오테이프라는 물건을 처음 만져보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을 거다.

▲ 시간강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얘기는 줄곧 들어왔지만, 직접 액수를 보니 이건 그냥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pixabay

나는 지난 학기의 강의를 생업으로써 맡은 게 아니다. 부당해고 소송과정에 있는 해직자로서 노동조합의 경제적 지원이 있고, 프리랜서 자격으로 하는 다른 일들도 심심찮게 있다. 대학 강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강의를 준비하며 관련 지식들을 모처럼 다시 정비하는데서 즐거움을 느꼈을 따름이다. 때문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강의료를 후일 확인했을 때는 어딘지 기분이 서늘해졌다. 주 2회의 강의를 준비하고, 수시로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과제 하나하나 채점하며 피드백을 달아주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은, 대학생 때 했던 과외 아르바이트 두 명 어치 보수에 못 미쳤다. 그나마도 내가 출강한 학교는 평균보다는 많이 주는 모양이었다. 지방과 서울 사이의 차이도 꽤 크다고 한다. 시간강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얘기는 줄곧 들어왔지만, 직접 액수를 보니 이건 그냥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차라리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벌이는 낫겠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 입장에서는 과제에 대한 풍부한 피드백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강사에게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노동의 대가는 주어지지 않는다. 강사의 급여는 오직 강단에 선 시간으로만 계산된다. 등록금을 낸 학생에겐 당연한 권리가, 강의료를 받는 강사에겐 무리한 요구가 되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수없이 만나는 이 간극을 여기서 또 보게 된다. 이 간극은 매번 누가 만드는 것일까. 그 많은 등록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이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