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안에서 미쳐가는 동물들 | '동물원법'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사육사, 관광객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현상은 사자, 호랑이 외에 동물에게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자신의 분변을 먹거나, 음식물을 계속해서 게워내고 다시 먹는 행동(regurgitation), 혹은 의미 없는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상동증(stereotypy)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실제로 동물원에 가보면 아무리 규모가 큰 동물원이라 하더라도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곰이 얼굴 털이 닳아 빠지도록 쇠창살에 얼굴을 비비며 고개를 끊임없이 흔드는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곰이 테크노 춤을 춘다'며 손뼉을 친다.

2015-04-07     동물자유연대

로스토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사자의 거취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안락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행히 로스토프는 안락사는 면했지만, 일 년째 방사장에서 격리되어 독방 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외국 사례를 참고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평생을 독방에 수감되어 보내거나 다른 시설로 옮겨지는 '징계'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좁은 우리 안의 삶, 당신은 살 수 있나

그러나 동물원의 사자의 삶은 전혀 다르다. 먹이를 사냥하거나 영역을 지키는 일, 같은 무리의 사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하루 몇 시간씩 이동하는 일 등 생태적 습성에 따라 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철저하게 제약되어 있다. 시속 60km로 달릴 수 있는 사자에게 허용된 공간은 고작 아파트 한 채 정도 크기의 사육장이다.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안을 왔다 갔다 하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일뿐이다. 식사 시간에는 사냥 대신 던져 주는 생닭을 뜯는다. 야행성 동물이지만 낮 시간 동안 몰려드는 관람객의 눈길과 소음을 그대로 견뎌야 한다.

김해에 있는 동물원의 호랑이. 야외 방사장 없이 햇빛이 들지 않는 실내에 전시되고 있다.

일산에 있는 한 수족관에서 전시되는 재규어. 실내에서 전시되고 있는데다 사방이 투명한 사육장은 관람객의 눈을 피해 쉴 수조차 없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동물원 동물들,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만

동물원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모습. 우리 안을 왔다갔다 하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반복적으로 토하고 토사물을 먹는 행동을 보인다.

이렇게 동물원이라는 곳이 본질적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관련법이 없다. 동물원 동물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원을 설립하려면 지자체의 경우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이나 '자연공원법'에, 개인이나 민간기업의 경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과 '관광진흥법'에 의해 설립하게 되는데, 이 중 어디에도 동물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기준은 찾아볼 수 없다. 유럽연합, 영국, 호주,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육 시설, 수의사 등 필요한 인력, 안전 장치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정부에서 면허를 받아야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현실이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이 '상해'를 입었거나, 고의로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경우만 학대로 규정하고 있어, 공연을 위해 훈련하는 과정 중에 일어날 수 있는 학대 행위나 생태적 습성에 맞지 않는 환경에서 동물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처럼 동물원이라는 구조 내에서 본질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는 터무니없이 미흡하다.

제주도에서 운영되는 동물쇼. 생태적 습성에 맞지 않는 행동을 강요하는 훈련 과정 중에 학대가 빈번히 발생한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동물원의 원숭이. 분변 처리를 쉽게 하기 위해 바닥이 철사로 된 '뜬장'에서 사육하고 있다. 뜬장은 동물 발바닥과 관절에 무리를 준다.

국민 95.1%, '동물원 운영하려면 정부 허가 받아야'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은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야생동물의 참 모습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아마 어렸을 적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보고 '코로 과자를 받아 먹는 동물' 이상의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동물이 최대한 고유의 모습과 습성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교육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법지대에서 운영되는 동물원들이 아이들에게 '약자에 대한 착취'를 가르치는 곳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또 더 이상 맹수에게 사육사가 변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동물원법의 입법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

글 | 동물자유연대 정책국장 이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