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야만사회에 살고 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부터 이 정신병원 저 정신병원을 전전하시던 할머니 환자를 만났고,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채 그 병원의 온갖 목수 일을 도맡아서 하던 아저씨 환자도 만났다. 그분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정신장애인은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거부당하였을 뿐 아니라 동지라고 여겨온 장애계에서도 외면당해왔다.

2016-02-18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병을 고치라, 정상인이 되라,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지금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병이 있든 없든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방식도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부터 이 정신병원 저 정신병원을 전전하시던 할머니 환자를 만났고,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채 그 병원의 온갖 목수 일을 도맡아서 하던 아저씨 환자도 만났다. 그분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10년 전인 그때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장애인이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은 너무도 미미하고, 사회에서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은 더욱 강해지고 있으며, 보호의무자라고 칭해지는 가족들은 정신장애인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은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거부당하였을 뿐 아니라 동지라고 여겨온 장애계에서도 외면당해왔다.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조항을 바꾸기 위해 인권위와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 등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바뀐 것은 강제입원에 동의하는 보호의무자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린 것뿐이다. 강제입원 절차에 있어 법원과 같은 독립된 심사기관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이제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도 동의하고 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신병원 격리·강박 실태조사 연구'에 참여하여 정신병원에서의 격리·강박 실태를 확인해보았다. 아직도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곳들이 적지 않았고, 격리실 바닥에 대소변을 보는 끔찍한 곳도 있었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환자들은 눈에 초점이 없이 유령처럼 부유하였다. 병실은 침대도 없이, 심지어 방문도 없이 환자들이 누워있거나 멍하고 앉아있었다. 어느 병원 조사 때에 만났던 한 한 환자는 97년부터 입원하였다고 설문지에 쓰셨다. 조사를 나간 우리가 들으라고 간호사실 앞에서 "제발 약 좀 적게 주세요"를 외치는 환자분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여전히 야만사회에 살고 있다.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현실 가능한 지역사회 모델을 계속 고민하였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 갈 곳이 없어서 퇴원을 시킬 수 없다는 슬픈 논리가 더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정신장애인들도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당당히 잘 살 수 있다는 구호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구현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지난 1월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어촌마을 우라카와에 있는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에 다녀왔다. '베델의 집'은 조현증(정신분열증), 우울증, 조울증 등의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1978년 정신장애 회복자 모임인 '도토리 모임'에서 시작한 베델의 집은 현재 작업장 2개소, 공동주거 12개소, 그룹홈 3개소, 유한회사 복지샵, 카페 등을 운영하는 큰 사회복지법인이다. 정신장애 당사자인 사사키 미노루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튿날 아침부터 뉴베델의 집 아침미팅에 참여하였다. 역시나 정신장애인 당사자분들이 주도하여 미팅을 진행하였고, 일과를 소개하고 당사자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그 날 컨디션을 이야기하고 배당받은 일의 양과 시간을 조절하였다. 이처럼 베델의 집은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해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놓고 땡땡이칠 수 있는 회사 만들기', '손을 움직이기보다 입을 움직여라', '자신의 병 자랑하기', '약함을 연대로' 등의 철학으로 운영되고 움직인다. 그룹홈을 둘러보고 베델의 집 공동설립자인 정신과 의사 카와무라 씨가 운영하는 정신병원에도 들렀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는 철저히 보호받고 존중되었다. 카와무라 씨는 원래 우라카와 적십자병원에서 근무했었는데 본인의 철학이 정신장애인에게 최대한 약을 줄여주고, 병원 입원도 최소화시키는 것이어서 적십자병원의 정신과 병동을 이용하는 정신장애인들이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적십자병원을 나오게 되었고, 그 근처에 정신장애인 이용시설을 겸한 아담한 정신병원을 개원하였다. 현재 우라카와에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가 1명도 없다고 한다. 정신병원 입구에 식당이 차려져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당사자들이 자유로이 연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병원 2층에 마련된 상담실과 휴식실은 너무도 안락하고 편해 보였고,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우라카와의 정신장애인들이 참 행복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뉴베델의 집 1층은 회의를 하고 프로그램 진행도 하지만, 다시마 포장과 베를 짜는 작업공간이기도 하였다. 사회적 숙련도 훈련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마 포장 작업을 참관하였다. 난 스티커 붙이고, 다시마 넣는 등의 단순작업을 너무 사랑하여 무례를 무릅쓰고 함께 포장작업을 하겠다고 나서서 잠시나마 작업을 같이 하였다. 과도한 작업량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손을 바삐 움직이기보다는 입을 움직여 서로 대화하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이튿날 다시 들른 '부라부라(어슬렁어슬렁)' 카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베델의 집에서 만든 포장된 다시마와 베델의 집 가족들이 베를 짜서 만든 목도리와 옷가지, 직접 만든 장신구, 당사자들이 그린 그림엽서를 판매하고 있었다. 지역주민들도 편하게 들러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물건도 구입하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이처럼 정신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우러져 교류하고 부딪히며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델의 집에 가기 전까지 난 정신장애인의 문제를 법과 제도로 피상적으로 접근했었다. 그들을 위하여 강제입원 조항을 개정하고, 정신병원 환경을 바꿔나가며, 지역사회 기반을 마련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법제도를 바꾸고 환경을 개선해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삶이 어떠한지 들여다보고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비를 같이 맞아가며 쌓아가는 한 사람 한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개개인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는 개개인들이 존중받는 것이 전제되어야 소중해지는 것이다. 정신장애인 문제의 시작을 정신병원에서 안타깝게 삶을 보내고 계신 할머니 환자, 아저씨 환자에서 했던 만큼, 올해는 정신장애인 한분 한분의 사정과 삶에 대해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자신의 '약함'을 들여다보면서, 약하기 때문에 서로 함께하고 응원하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 게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