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리사와 사랑에 빠진 후 알게 된 것들

2016-02-17     Andy Marra

내가 싱글이냐고? 아니, 나는 요리사와 약혼했을 뿐이다.

라인 쿡 중 하나다. 그는 미국 요식업계에서 1년 중 가장 바쁜 날들 중 하나인 발렌타인 데이에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수많은 커플들을 위해, 발렌타인 데이 식사를 다시 한 번 로맨틱하고 기억에 남는 행사로 만들어 주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일할 것이다.

나와 드류의 초기 데이트들은 음식이 중심이 되었다. 몇 번은 그가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그가 주방에 있는 것을 보니 그가 우리 관계의 초기부터 이야기했던 그의 열정이 나도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해?” 그가 압력솥 뚜껑을 덮은 다음 물었다. 칭찬을 들은 그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몇 달 뒤, 어느 후텁지근한 8월 저녁에 드류와 나는 그가 살던 아파트에서 가까운 소호의 붐비는 국수 가게 켈리 & 핑에 갔다. 주문을 한 뒤 드류는 내게 이야기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나는 드류에게 이 철저한 변화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요리 학교에 갈 거야? 오래 일하면서 훨씬 더 적은 돈을 버는 건 괜찮아? 새 방향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드류가 한 말을 듣자 여러 가지 밥과 국수를 먹는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곧 레스토랑에서 나와, 다시 자갈이 깔린 습한 소호의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나는 지하철 역에 도착하기 전에 드류를 멈춰 세우고 마침내 내 생각을 말했다.

내 손을 잡는 드류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우리가 달라질 수도 있어.” 그가 천천히 인정했다. “넌 그건 괜찮아?”

내 진정한 모습이 우리의 관계에 장애물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해주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여러 면 중 하나였다.

“좋아.” 그는 조금 안도한 것 같았다. “이 일을 너와 함께 하고 싶어.”

한국인 입양아인 드류는 한국의 음식을 더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요리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한국 주막을 본뜬 한국 식당인 한잔에 문의했다. 우리는 함께 보낸 첫 발렌타인 데이를 한잔에서 보냈다.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격려의 미소를 지었다. “최소한 일주일은 기다려 봐.”

우연히 드류는 댄 클루거 셰프에게도 소개를 받았다. 당시 그는 ABC 키친과 ABC 코치나의 총 주방장이었다. 경험은 몇 개월에 불과했지만, 드류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를 수상한 ABC 키친 면접 제의를 받아 깜짝 놀랐다. 댄 셰프가 그 자리에서 드류를 채용했을 때는 더욱 놀랐다.

금융업에 있을 때와는 달리, 드류는 얼른 일하러 가서 배우고 싶어서 아침마다 후다닥 일어났다. 12, 13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도, 다시 똑같이 요리할 수 있도록 자기 전에 몇 시간 동안 새 레시피와 요리책을 공부했다.

어는 날 밤늦게 집에 돌아온 드류는 내게 자랑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것 봐! 내 손 좀 봐!”

“아까 이게 이만했을 때 봤어야 되는데.” 드류는 신이 나서 다치지 않은 손으로 손짓했다.

“난 괜찮아.” 드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다른 요리사들이 더 심하게 다치는 것도 봤는데, 다 그냥 계속 일해.”

“내 말 믿어, 자기야. 주방에서 다치는 게 이게 마지막은 아닐 거야!” 그는 즐겁게 내게 외쳤다.

그 이후 우리는 그의 상처를 위한 1회용 반창고, 골무, 크림, 연고들을 잘 갖춰두었다. 하지만 궂은 일과 여러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이 요리하고 배우려는 드류의 열정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주방은 내 인생의 연인을 호기심, 자신감, 야심으로 가득찬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여러 해 동안 우리 두 사람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접근을 조금씩 바꾸었다.

드류와 같이 집에 갈 수 있게 가끔 늦은 밤에 레스토랑에 들르기도 한다. 그가 주방에서 걸어 나오는 것, 내가 레스토랑 바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그의 지치고 구겨진 몸이 생기를 되찾는 것을 보면 잠 몇 시간을 잃는 것이 아깝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의 명절을 우리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드류는 외식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방에서 요리한다. 가끔 명절을 즐기긴 했지만, 우리는 보통 실제 명절보다는 며칠 일찍 혹은 늦게 축하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소중한 쉬는 시간에는 나는 알리니아나 베누 같은 곳을 예약해서 그를 놀라게 해주는 것으로 그의 휴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려 한다. 그는 그런 곳에서 신성한 주방을 견학하고, 더 나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을 키웠던 셰프들을 직접 만나는 영광을 누렸다.

나처럼 요리사나 셰프와 사귀는 사람들은 연인을 실제로 보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서 농담 삼아 (그리고 어쩌면 마지 못해) 우리는 셰프의 과부라고 한다. 나는 드류 없이 파티와 모임에 가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다. 또한 내 저녁 시간을 대부분 혼자 보내는 것에도 적응해야 했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그의 직업과 우리가 함께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싸운 적이 있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드류는 천천히 키를 뽑고 뒤에 기대 앉았다. 스파이시 페퍼로니와 녹은 치즈 냄새가 차 안에 감돌았다. “네가 언짢아 하는 건 이해해.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솔직히, 우리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도 너 같은 기분이 들었을 거야. 가끔 나는 요리 때문에 내가 혼자가 될까 봐 두려울 때도 있어.”

“있잖아, 우리에겐 노래가 있어.” 드류가 갑자기 털어놓았다.

“’유어 송’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방에서 일 준비하고 있으면 자주 나와. 그 노래를 들으면 늘 네 생각이 나.”

“힘들다는 거 알아.” 드류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힘들어. 하지만 넌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는 걸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가는 곳마다, 특히 주방에 있을 때 너를 함께 데리고 가. 너 없이 내가 이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언제나 너를 최우선으로 할 거야.”

“나도야.”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발을 내디딘다. 드류가 나를 선택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드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이 경험은 우리 사이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약속했던 대로 이러한 어려움들을 함께 해결하고 있다. 그가 이 삶을 선택한 것 만큼이나, 나도 이 삶을 선택한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발렌타인 데이를 약혼자와 함께 보내지는 못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요리에 들어가는 사랑과 열정을 경험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그에게서 매일 받는 바로 그 사랑을 경험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블로그 글을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