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강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사진)

2015-04-08     곽상아 기자
ⓒ한겨레

3월30일 월요일

A 72라 ○○○○ 골드 25인승 버스. 71모 ○○○○ 아이보리 25인승 버스. 72거 ○○○○ 블랙 승합차. 70고 ○○○○ 실버 승합차. 목동(출입국관리사무소)은 지금 출발. 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오전 11시에 출발한답니다. 단속 주의 바랍니다. 연락망으로 전파해주세요. (오전 10시51분)

A ○○공원 부근 단속. (오후 1시35분)

B ○○동 단속 중. (오후 1시41분)

C 차번호 알려줘. 트랙터로 받아버리게. (오후 1시53분)

A ○○동 어떤가요. (오후 2시57분)

B 떴다 하면 2시간이 고빕니다. (오후 3시)

3월31일 화요일

D 71보 ○○○○. (오전 10시15분)

E 뭐야? 오늘도? (오전 10시18분)

D 아직은 몰라요. (미심쩍어) 그냥 받아적은 거예요. (오전 10시18분)

도망갈 곳도 없는 이들에게…

“떴다.”

검은 차광막을 두른 가건물 창고 앞에 승합차와 25인승 버스가 서 있었다. 창고 옆 밭에선 수확철을 맞은 굵은 봄대파들이 하늘을 치받았다. 뱀 허물처럼 벗겨진 대파 껍질들이 밭 주위로 수북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범법자’로 체포돼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통증을 쓰다듬고 싶어도 옆 사람의 팔에 엮인 손은 다른 쪽 손목을 만질 수 없었다.

왜 수갑을 채웠나.

어떤 기준에 따라 수갑을 채우나.

도망갈 곳이 딱히 없어 보이는데.

“사람을 그렇게 막 다뤄도 되나”

창고 밖에서 연행 장면을 지켜보던 농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살 좀 합시다. 우리 다 죽이려는 거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체포한 단속반원이 고용주에게 고용확인서를 받고 있다.

강압적 단속에 대한 증언은 많았다. 3월29일 ㄱ(51)이 고용한 노동자 십수 명이 체포됐다. 그는 “단속반이 고추 지지대로 쓰는 쇠꼬챙이를 휘두르면서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 농장에선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저항할 틈도 없이 파 작업하던 애들의 팔을 수갑 채워 엮었다. 어떤 애들은 팔이 뒤틀려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협조할 테니 애들 수갑은 풀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포를 해도 합법인지 불법인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조건 수갑부터 채워놓고 체류 자격은 뒤에 물었다.” 그에겐 1천만원이 넘는 벌금(고용한 미등록 노동자 1명당 200만원)이 나왔다.

“정부 합동단속, VIP의 관심이 많다”

5월1일까지 계속될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 합동단속’은 범정부적 협업이다. 법무부와 경찰청, 고용노동부에 국민안전처까지 결합해 있다. 지난 2월5일 정부서울청사에선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위한 대응 방안이 마련·발표됐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중국동포 토막살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외국인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불법체류자 수가 2014년 말 현재 20만 명을 상회하는 등 사회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 따랐다. “연중 상시 단속체제 유지 계획”도 제시됐다. 치안 부재에 따른 국민적 비난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향한 공포심으로 치환하는 ‘익숙한 기획’이다.

2013년 현재 사법 당국에 검거(전체 범죄의 경우)된 한국인이 171만6318명(98.6%)일 때 외국인은 2만4968명(1.4%)이다(안기희 수원이주민센터 대표 활동가·‘수원시의 외국인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성찰 방안’).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의 경우는 48만5770명(97.8%)과 1만757명(2.2%)이었다. 미등록 외국인의 범죄발생률은 등록 외국인보다도 낮다. 미등록 외국인의 증가가 사회불안의 크기와 비례한다면 한국인이 일으키는 사회불안은 최소 45배 크다. 과업이 떨어진 이상 실무자들은 숙제를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농업 생산의 ‘결정적 존재’가 된 농번기 농촌은 미등록 외국인 단속반에겐 ‘털면 무조건 털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정부 합동단속반에 체포된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수갑을 찬 채 대파 사이에 앉아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실적 2만 명 달성 지시가 합동단속반에 내려졌다’는 소문이 농민들 사이에 돌았다. 한 단속반원은 “불법체류자가 20만명을 넘어가니까 그 밑으로 떨어뜨리자는 것”이라고 합동단속의 취지를 말했다. “정부 합동단속은 VIP(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사안으로 VIP의 관심이 많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밝혔다. 그는 “단속이 강화되면 우리 직원들도 힘들다”며 “우리도 애로 사항이 많다”고 했다.

“정부가 쥐새끼를 코너에 몰아 죽이는 격”

투두두두두두두.

노동력을 잃은 농민들은 극단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 “3만5천 평을 빌려 농사를 짓는데 가족끼리 관리할 수 있는 면적은 5천 평 정도다. 수확할 사람이 없으니까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 그냥 두면 잡초가 생기고 벌레가 끓어 땅까지 못 쓰게 된다.” ㅅ은 200평 비닐하우스 150동을 갈아엎을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쥐새끼를 코너에 몰아 죽이는 격이다. 대책은 세워주고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주노동자 단속은 농가에 지진을 몰고 왔다. 농민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 농촌(특히 시설채소 농가)에 한국인 노동력의 씨가 마른 지 오래다. 이주노동자(상시 고용노동의 경우 전체의 36.7% 차지·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박사 연구) 없인 농사가 불가능한 시대(제1038호 ‘나쁜 사장님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참조)에 한국은 이미 와 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한국인이 먹는 일상의 밥상은 차려지지 않는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면 각종 세금 감면과 직불금 혜택 등을 얻을 수 있다. 땅을 소유한 외지인 지주들이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농업인으로 등록한다. 정작 농사를 짓는 임차농들은 농업경영체가 못 된다. 우리한테 좀 양보해달라고 하면 ‘하우스 뽑으라’고 한다.”

농업경영체가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고용허가제 할당 쿼터) 자체도 너무 적다(2015년 전 분야 5만5천 명 중 농·축산업 분야는 6천 명+α)고 농민들은 호소했다. “농업에 배정된 인원이 부족한데다 임차농은 고용 자체를 못하니까 불법 상태인 외국인들을 쓸 수밖에 없다. 대책도 대안도 없이 무조건 잡아가버리면 우린 다 죽는다. 두고 봐라. 머지않아 제초제 마시고 죽는 사람 나올 거다.”(ㄷ)

“갈아엎으려 해도 갈아엎을 인력이 없다”

3월 중순 단속으로 일손을 모두 잃은 ㅈ은 “수습이 안 된다”고 했다. 겨우내 키운 농산물은 출하 시기를 놓쳤고, 미등록 노동자 고용 벌금은 1천만원 이상 나왔다. 땅주인에게 임대료를 낼 시기도 다가오고 있다. “갈아엎으려 해도 갈아엎을 인력이 없다”고 했다. “파산 직전이다. 아버지가 삶의 의욕을 잃었다. 걱정된다.”

ㄷ이 손날로 목 긋는 시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