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의 비극

내년까지 2만7000명이 지방으로 더 내려가겠지만, 이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 역시 20%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무엇보다도 자녀교육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인서울'이라는 속어의 유행이 잘 말해주듯이, 서울 소재 대학에 대한 집착이 병적인 수준으로 대중화된 세상에서 공부하는 자녀를 지방으로 데리고 내려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인서울' 강화 정책을 씀으로써 오히려 혁신도시 사업의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교육부가 추진한 전국 4년제 대학 204곳의 2015학년도 정원 감축분 8207명 중 7844명(96%)이 지방에 몰려 있다.

2015-04-06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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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동반 이주율을 높이려고 애쓰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몸부림도 눈물겹다. "'신의 직장' 지방 이전 공공기관 직원에 현금 퍼주는 '가난한 지자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잘 말해주듯이, 지자체들은 사실상 지역민에 대한 역차별도 불사해 가면서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각종 현금 지급을 포함해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인서울' 강화 정책을 씀으로써 오히려 혁신도시 사업의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교육부가 추진한 전국 4년제 대학 204곳의 2015학년도 정원 감축분 8207명 중 7844명(96%)이 지방에 몰려 있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4년제 대학의 36%(73개대)가 모여 있지만 정원 감축은 전체의 4.4%(363명)에 불과했으며, 특히 40개 대학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 줄인 정원은 17명뿐이었다.

교육부가 지방을 죽이겠다는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니다. '대학평가'라고 하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문제는 그 근거가 '동어반복'이라는 데에 있다. 잘 생각해보자. 서울 소재 대학들은 한국의 권력과 부는 물론 문화 인프라와 일자리까지 집중돼 있는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즉 입지조건이라는 이점 하나만으로 우수 학생들을 독과점하고 있다. "개도 자기 동네에선 반은 거저먹고 들어간다"는 속설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나라에서 어찌 서울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으랴.

교육부가 그런 동어반복을 계속하는 한 혁신도시 사업은 필패하게 돼 있다. 서로 떨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의 수만 늘려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며, 사람이 터를 잡지 않는 혁신도시가 제 기능을 할 리 만무하다. 지방이 원하는 건 특혜가 아니다. 공정한 경쟁이다. 지방에 공정한 경쟁을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런 희망이 있을 때에 비로소 가족 동반 이주를 하는 공공기관 직원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혁신도시 사업의 주체는 국토교통부와 더불어 교육부가 되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