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영어 스쿨] 한때 미국 유학이 꿈이었지만

한국 여성의 삶을 바꾸는 하나의 계기로 나는 배낭여행을 꼽는다. 유학보다 경제적 비용도 적고, 시간 손실도 적다. 무엇보다 유학보다 훨씬 더 즐거운 추억을 안겨준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언어로 학업으로, 취업으로, 업무로, 현지인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여행은 누구와 경쟁할 필요 없이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즐길 수 있는가, 없는가. MBA보다 싸다. 학위가 없어 취업은 MBA보다 못하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요즘 MBA도 취업이 예전만 못하다.

2016-01-27     김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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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38. 지배받는 지배자

뒤표지에 나온 글로 책소개를 시작해보자.

사회학자가 15년간 추적한 미국 유학 현상과 유학파 지식인의 실체

(지배받는 지배자 뒤표지 / 김종영 지음 / 돌베개)

책은 도입부부터 선승의 죽비처럼 나의 뒷통수를 딱! 치고 오더라.

(같은 책 20쪽)

한국만큼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목숨 거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미국 유학에 대한 영어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모 대학의 교육학과 교수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곳에 영어를 배우러 오는 한국 부모들과 학생들이 많은데 굉장히 신기하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내 논문을 읽었으며, 한국 사람들에게 영어와 미국 학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나 자신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런 이메일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지구 반대편까지도 가는 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얼마전 아이와 발리 여행을 갔더니, 어떤 분이 "아이랑 오신 김에 여기 국제 학교도 알아보고 가세요." 라고 하시더라. "발리에도 국제 학교가 있나요?" 했더니 물가도 싸고 동네 분위기가 좋아서 한국에서 많이들 보낸다더라. 정말 놀랐다. 배낭족들의 천국 발리까지 교육 엑소더스를 오는구나. 영어에 한 맺힌 부모들이 애 여럿 국제 난민 만드는구나...

작년 여름, 한강 시민 공원에서 주말연속극 '여왕의 꽃' 야외 촬영을 하는데, 갑자기 운동하던 흑인 두 명이 왔다. 밤에 조명을 켜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으니까 구경 온 거다. 자꾸 이것저것 물어봐서 귀찮으니까 스태프들이 나한테 보내더라. 미군 병사들인데 한국 드라마 촬영이라니까 자신들도 출연하면 안 되냐고. ^^ 당시 촬영 장면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두 남자가 다투는 씬이라 극의 설정상 다른 사람이 나오면 안 된다고 웃으며 돌려보냈다. 그후로 나를 보는 코디들의 눈빛이 달라지더만. '우리 감독님이 동시통역사였다고?' (글만 쓰면 자기 자랑이 나오는 이 몹쓸 버릇! 이런 재미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나요. 호호호)

책 끝머리에 나오는 유학의 장점.

송 팀장 :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 대학교까지 나오고 직장 생활 하면서도 여자로서 얌전해야 되는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랐잖아요. (중략) MBA는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거 같아요. (후략)

(같은 책 230~231쪽)

여행을 즐기시라. 그것도 삶의 태도를 바꿔주는 경험이다.

인터뷰를 한 어떤 교수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을 선물했다. 내가 미국 유학에서 가장 부러운 건 이런 거다. 뛰어난 스승을 만나 스킨십을 나누는 것. 모리 슈워츠같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이야! 하지만 유학을 못 가도 이제 상관없다. 어차피 모리 교수도 돌아가셨다. 모리의 마지막 강의는 책을 통해 들으면 된다. 아직 안 보신 분들께는 강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만약 그 길로 갔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디테일이 살아있는 책 덕분에 살짝 그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 유학 가서 가장 잘 된 케이스는 아마 미국 대학에 남아서 교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도 딜레마가 있더라.

(같은 책 242쪽)

(같은 책 266쪽)

학벌 인종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교육시민전쟁'에서 미국 유학은 엘리트의 길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자 필수 통과 지점이다. 계층과 교육의 상호 전환을 목적으로 한국의 엘리트 부모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의 미국 유학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의 엘리트 계층은 '코즈모폴리턴 양육 방식'을 채택하며 영어 과외, 어학 연수, 유학, 해외 여행 등의 기회를 자녀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양육 방식의 문화적 지배력이 확대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한국을 넘어 다양한 트랜스내셔널 교육 형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같은 책 300쪽)

2005년인가? 미국 와튼 스쿨에서 MBA를 딴 아내가 당시 미국기업에서 취업 제안을 받고 나에게 이민을 제안한 적이 있다. 아내는 그때 내게 '당신도 영어는 좀 하니까 같이 미국 가서 살자'고 했는데,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한국에서는 MBC PD라고 나름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을 누리고 사는데, 미국 가서 발음 어설픈 이주노동자로 살기는 싫었다. (가뜩이나 한국에서도 동남아 이주노동자로 오해를 사고 설움을 겪는데 말이다.)

나는 연애의 고수다. 짝사랑이라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나 혼자 좋아해도 그 마음만 진실하면 되지, 뭐. (갑자기 설움이...ㅠㅠ ^^)

내일 모레 은퇴를 앞둔 나이지만, 여전히 내게는 꿈이 있다.

그 상품은 바로 '나'다. 유학 한 번 안 가보고, 3개 외국어를 마스터하고, 공대를 나와서 예능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 경험을 갖춘 한국의 공중파 피디. 베트남이건, 몽골이건, 어디서든 불러주면 달려가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 제작기법을 전수할 생각이다.

나는, 내 인생의 지배자로 살기를 꿈꾼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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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