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유가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변했을까?

과거 기름 값 하락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경제에 축복이었다. 주요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과 생산 원가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일쇼크로 인한 1970년대의 경기 침체와 3저(低) 중 하나인 저유가로 인한 1980년대 후반의 호황을 경험한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저유가가 세계를 짓누르는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연초에만 세계 증시가 20% 가량 무너져 내린 것도 저유가 탓으로 본다. 왜 이번 저유가 흐름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것일까?

2016-01-26     김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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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저유가가 10년 가까이 이어질 추세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현재의 기름 값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른 것은 분명하다. 추락에 가속도가 붙은 이유는 비교적 간단한 경제 원리 때문이다. 우선 미국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기름 먹는 블랙홀 격인 중국 경제마저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석유 수요는 답보 혹은 퇴행 상태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지인 중동의 지정학 요인도 공급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산유국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감산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상실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는 수니파 중심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이 중동 맹주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주도권 다툼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2주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했듯, '뭔가 변하지 않는다면, 공급 과잉 사태가 원유 시장을 삼켜버릴 지경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저유가가 세계를 짓누르는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연초에만 세계 증시가 20% 가량 무너져 내린 것도 저유가 탓으로 본다. 왜 이번 저유가 흐름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것일까?

해외 변수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저유가가 저주로 작용하는 환경이 있다. 세계 경제가 좋지 않고 국내 경기마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생산원가가 줄어도 수출이나 소비가 크게 늘지는 않는다. 대신 당장 저유가로 인한 타격을 입을 몇몇 산업이 등장했다. 산유국이나 신흥국의 수주가 줄어드는 건설이나 조선업에 더해 석유 생산 및 유통과 관련된 석유화학과 정유 산업 등이 여기 해당한다.

물론 저유가의 저주를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 특정 국가와 산업의 피해는 즉각적이지만, 장기적으로 저유가는 소비자와 세계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 불안과 장기 경기침체에도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은 저유가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와 넉넉한 외환보유고 덕이다. 하지만 잊지 말일이다. 저유가가 무조건 축복이기만 하던 호시절은 이제 완전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