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산물로 음식 만들기 24년

유기농산물로 장을 본다고 하면, 여러 가지 편견들이 많다. 먼저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지 않느냐 묻는다. 대부분 주부들이 대형마트에서 대용량 포장 물품을 구입한다. 싸고 맛있는 것이 장보는 기준이다. 제철도 원산지도 무시하고, 재배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수확 후 농약처리를 했는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시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또 유기농산물로만 밥상을 차린다면 건강강박증이 있거나 까다롭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신경 쓰며 사냐고 신기하다는 시선을 보내지만, 오히려 내 장보기 방법이 더 단순하다.

2016-01-18     살림이야기

24년 생협 소비자로 '책임소비'하며 함께 살기

글 박연주(한살림 조합원)

못 먹을 것, 돈 주고 사 먹는다?

처음으로 유기농산물을 만난 날이 기억난다. 늘 때깔 좋고 흠집 없고 크고 반듯한 채소와 과일을 고르던 습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작고 칙칙하고, 검은 반점이 있는 사과와 벌레 먹은 채소를 보고 "못 먹을 것을 돈 주고 사 먹는다"고 친정 엄마한테 혼난 기억이 생생하다.

부자만 먹는다고? 유난을 떤다고?

또 유기농산물로만 밥상을 차린다면 건강강박증이 있거나 까다롭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신경 쓰며 사냐고 신기하다는 시선을 보내지만, 오히려 내 장보기 방법이 더 단순하다. 중국산과 국산 구분법을 몰라도 되고, 농약을 얼마나 쳤는지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 가격 비교하느라 예민할 필요도 없어 장보기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으니 얼마나 편한지. 그저 유기농업 생산자를 믿고 지지하며 꾸준히 물품을 주문하면 된다. 하나라도 싸게 사려고 인터넷을 뒤지는 주부의 눈에는 비싸게 사 먹는 헤픈 주부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낄 곳과 아끼면 안 되는 곳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값 주고 농산물을 사면 바보?

농민들은 풍년이어도 흉년이어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 원가도 건지지 못해 밭을 갈아엎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이 매년 들린다. 이럴 때면 농촌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가 제값에 계약하여, 농민의 생활도 책임지고 소비자의 생명도 책임지며, 유기농산물 직거래를 하는 한살림이 있어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사는 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아무 때나 어떤 식재료든 사시사철 제공하는 마트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생협이 불편하다. 특정 농산물이 나오는 시기가 있고, 집으로 배달받으려니 정해진 요일에 주문하고 받는 습관이 안 들어 금방 마트로 회귀한다. 알뜰하게 주문하는 법, 강렬한 양념을 안 쓰고 맛을 내는 법이 막막하다면 주위 조합원에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 활동하면서 좋은 이웃도 사귀고 농부를 가족처럼 여기는 마음도 얻는다. 마트에서 장보며 살았다면 경험할 수 없을 것들을 나는 얻었다.

초기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들은 몇 가정이 공동체를 구성해 유기농 물품을 함께 공급 받았다. 물품이 오면 한자리에 모여 나누면서 요리해 먹는 방법,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등도 나누었다. 1994년에 서울 방학3동우성2차 우리공동체(위), 화곡동 북어대가리공동체(아래) 등에서 공동체 공급을 받고 있는 사진이다.

흉년일 때도, 풍년일 때도 한결같아야!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유기농업을 하고 유기농 밥상을 차리는 목적은 아니다. 농촌이 재해를 입어 상태가 좋지 않거나, 또는 풍년이라 시중 가격이 헐값이라 유기농산물이 안 팔릴 때 한 개씩 더 사서 이웃과 나눠 먹거나 선물한다. 소비자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하는 것뿐인데 며칠 새에 완전 소비가 될 때도 있다. 그럴 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 해낸 저력에 감탄하곤 한다. 농민과 소비자가 가족이며 공동운명체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렇게 공기와 물이 오염된 세상에서 완벽한 유기농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럴수록 유기농업을 살려야 공기와 물과 땅의 오염을 막아낼 수 있다. 유기농을 돈벌이로만 접근하는 농부와 유통 상인만 있고, 인증마크로만 유기농을 인식하고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다고 큰소리치는 소비자들만 있다면 유기농은 제 갈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부디 생산자는 그저 유기농업을 하는 직업인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소비자는 '손님은 왕'이라는 자세로 내 돈 주고 품질 좋은 유기농 물품을 사 먹는다는 단순 소비자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