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외줄 끝내 오른 박지윤

2015-04-05     김병철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어린아이는 엄마와 유년기를 보내는 게 정서에 좋지 않느냐는 걱정을 가장한 참견부터, 둘이 안 벌면 안 될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우냐는 비아냥, 결혼까지 했으면 일 욕심은 줄여도 되지 않느냐는 성차별적인 언사와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지 않느냐는 노골적인 퇴직 요구까지.

3월 한달간 나는 4편의 글을 썼다. 글에서 다룬 4명 모두 여성 연예인이었다. 때마침 고아성이, 채시라가, 김희선이, 수지가 각각 좋은 작품을 선보이거나 이슈가 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절반 정도는 의도적이었다.

고민 끝에 난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이 있는 3월 한 달만큼이라도 되도록 여자 연예인들로만 목록을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3월을 보낸 뒤, 난 내가 한 명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나운서 박지윤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걸 새카맣게 잊은 게 아닌가. 박지윤이야말로 앞서 이야기한 모든 편견과 맞서고 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 사상 최초 백상예술대상 여자 예능상 후보 지명, 방송 출연 개수를 절반 가까이 줄인 지금도 4개 프로그램에 메인 진행자로 고정 출연하는 여자 연예인.

(2004~2010)로 풀리기 시작했던 2006년부터, 박지윤은 끊임없이 외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그나마 뉴스는 상황이 낫다. 커리어가 뉴스나 교양이 아닌 ‘예능’으로 풀리기 시작하면, 여자 아나운서가 받는 상대적 저평가 위에 예능인에 대한 뿌리 깊은 천시가 얹어져 차원이 다른 홀대를 받는다.

자신의 약점을 무기 삼아 남들을 웃기는 코미디 특유의 문법과 남에게 내려놓음을 강요하는 것을 헷갈리는 이들이 많은 탓에, 그의 사소한 신체적 특성은 종종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을 진행하며 박지윤은 종종 자신보다 야리야리한 체구의 여자 아이돌과 비교를 당했고, 그 탓에 ‘등빨’ 좋다는 이야기나 ‘어깨장군’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예능은 시청자를 웃게 만들면 그뿐’이라 외모 비하를 합리화하는 상황을, 박지윤은 그저 우직하게 전진하는 것으로 돌파했다.

박지윤은 그렇게 존중받는 내일을 위해 존중받지 못하는 오늘을 견뎠다. 40번 이상의 낙방을 견뎌가며 도착한 곳에서는 노력에 대한 존중 이전에 ‘등빨’을 먼저 이야기했고, 프리랜서 전향 이후 지상파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횟수가 줄어들자 사람들은 으레 ‘육아에 전념하느라 방송을 쉬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세상은 ‘농담’ 속에 뼈를 숨겨 박지윤의 발목을 건 것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바람직한 여자 연예인 체형’을 벗어났다고, 결혼하고 출산도 했으면 좀 쉴 것이지 왜 그렇게 악착같이 나오냐고. (실제로 첫 문단에 적은 글의 대다수는 박지윤이 둘째 출산 27일 만에 제이티비시 <썰전>에 복귀했을 때 인터넷에 올라온 네티즌 반응들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한국 사회가 여자 연예인을 대하는 태도를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캐릭터로 극복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우회하지 않으면 자신이 설 자리를 만들 수 없다.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슈퍼우먼이 되어야 비로소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가사노동, 육아 등의 성 역할 고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말하는 건 불공정하다.

지난해 10월 제이티비시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박지윤은 “아이들이 자랄 때는 엄마가 아빠보다 더 많이 옆에 있어줘야 좋다”는 패널들의 말에 차분히 “아빠가 대신해줄 수 없는 (엄마만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하기 시작하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근본적으로 막힌다”고 반박했다.

같은 해 같은 방송사의 추리예능 <크라임 씬>에서 박지윤은 홍진호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깨고 홍진호를 위협하는 실력을 입증하며 ‘추리여왕’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박지윤은 첫번째 시즌에서 단 두차례를 제외하고 모든 사건에서 승리했다. 마치 “사실은 이렇게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게 맞지 않느냐”고 세상에 되묻기라도 하는 듯.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