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살아나니까 내가 살았어요"

"내가 농사지은 거 죄의식 없이 팔 수 있고, '내가 기른 게 남한테 도움이 되겠구나' 하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게 되죠. 유기농은 '농약·화학비료 안 주고 어떻게 농사가 되느냐?'는 생각만 바뀌면 돼요. 한 번 체험하면 그 다음부터는 안 주게 될 거예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니까."

2016-01-13     살림이야기

경기 여주에서 벼·고구마·땅콩 농사짓는 경영란·송두영 씨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우리는 한살림 농사지으려고 태어났나 봐요"

부부는 논 약 4만 2천975㎡(1만 3천 평)와 밭 약 1만 9천835㎡(6천 평)에 농사를 짓는다. 벼·녹두·수수·감자·고구마·땅콩·파·양파 등 가짓수도 많다. 농지 중 부부가 소유한 건 1/3 정도, 나머지는 주로 친지들에게 빌렸다. 논농사는 송두영 씨가 맡아 주로 농기계로 짓고, 밭농사는 경영란 씨가 맡아 한다. 오랜 밭일로 허리가 상한 경영란 씨는 일을 좀 줄이려고 하는데 막상 생각처럼 안 된다고.

여주가 고향인 송두영 씨와 이웃 마을에 살던 경영란 씨는 1979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든 남편과 함께 아내도 농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1년 한살림을 알게 되고, 2002년 정식 활동을 시작한 여주 금당리공동체의 '창립멤버'가 됐다.

그러나 수년간은 실패뿐이었다. 오리농법으로 벼농사를 시작했는데 너구리가 오리를 다 잡아먹어 버리고, 우렁이농법도 풀 잡는 노하우가 없어 3년을 고생했다. 감자는 굼벵이가 먹어 다 버려야 했다. 빚이 늘어갔다. 하지만 4~5년째부터 부부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우렁이농법은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궤도에 올랐고, 농약중독에서 해방되면서 "비리비리하던 몸"도 좋아졌다.

또 가격이 보장되기에 최선을 다해 농사짓는 데만 신경 쓰면 된다는 점도 한살림 농사의 큰 장점이다.

친환경 농사지은 지 15년이 넘다 보니 어느 정도 안정되어 저축은 못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연두색 녹두도 곱게 말리는 중. 부부가 자가 채종해 기른 귀한 곡식이다. 요리솜씨 좋은 경영란 씨 손을 거치면 또 얼마나 맛난 음식이 될까.

오전 내내 오던 비가 그치고 보리 싹에 물방울이 맺혔다. 밭에 보리를 심었다가 갈아엎으면 병해충도 예방되고 거름도 된다. 또 미생물이 활성화된다고 하니 내년 농사도 기대가 된다.

유기농으로 정성껏 길러도 모양 안 좋으면 버려져

"형제들이 와서 많이 도와줘요. 그러면은 며칠 할 것을 하루 이틀이면 할 수 있지. 오면 여기서 먹을거리를 다 가지고 가라고 해요. 다 퍼 주니까 또 오죠."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농약 안 쓰고 농사짓냐고 하지만, 유기농 오래 하다 보면 땅에 미생물이 생겨서 농사가 알아서 돼요."

"여기서는 '장아리'라고 부르는데, 어렸을 때부터 먹어 와서 씨앗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일반 무에 비해 매운 맛과 톡 쏘는 맛이 있어요. 또 단단해서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김장할 때 좀 짜게 담가서 여름까지 먹어요."

고구마는 한 밭에서 3년 이상 기르면 바이러스가 생겨 연작할 수 없는 작물이다.

그저 정성을 들이고, 자연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고구마 농사가 어려워지면서 땅콩 농사에도 눈을 돌렸다. 2009년에는 공동체 출자와 지자체 지원을 더해 금당리공동체에서 땅콩 가공공장도 만들었다. 생산부터 가공까지 산지에서 한 번에 하게 된 셈이다.

작물 중에는 양파가 밭도 더 매야 하고 망에 넣어 무거운 짐도 옮겨야 해서 힘들다.

하지만 정성 들여 기른 농산물들이 조합원들에게 닿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살림이야기》 2015년 10월 호의 '버려지는 먹을거리' 특집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품 중 1/3은 그냥 버려지고, 내용이 아닌 외형에 맞추어진 품질기준이 멀쩡한 식품을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든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다.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다만 자연에 기대어 길러 낸 작물들이 늘 매끈하고 흠 없을 수 없는데.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이라면 너무 예쁘고 반듯한 게 오히려 이상한 건데. 지금 이 농산물이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안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송두영 씨는 아내 경영란 씨의 손을 어색함 없이 잡고 눈을 맞춘다. 유기농사 잘해 온 것도 대단하지만 부부 간의 담뿍한 정을 늘 간직하며 살아온 게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뭐든지 하려고 한다"고 아내를 칭찬하고, 아내는 "의지가 강하고 인정이 많은" 남편을 좋아한다.

"중부지역은 날이 추워서 양파가 안될 줄 알았는데 실험재배해 보니 잘되더라고. 한 지 3년이 안 됐어요." 부부는 가을에 심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 6월에 수확할 양파 농사에 정성을 많이 들인다.

토종 무인 게걸무는 이렇게 생겼다. 누군가 이 무로 만든 김치를 게걸스럽게 먹었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갓김치보다도 톡 쏘는 맛이 별미란다.

기후변화와 쌀 소비 감소에도 첫마음을 잃지 말고 '한살림' 합시다

"화학조미료 안 쓰고 재료 우린 육수로 맛을 내요. 또 양조간장 안 쓰고 음식을 좀 싱겁게 하고요. 메주를 네다섯 말 직접 만들고 고추장도 스무 근씩 담가서 형제들과 다 나누어 먹어요. 형제들이 주말에 쉬고 싶을 텐데도 와서 우리를 도와주니까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요."

"내가 봐도 우리는 참 희한해요. 몇 번 못 봐도 만나면 형제처럼 반갑고 좋아요." 경영란 씨가 여성생산자 일이라면 아무리 먼 데서 오라 해도 가는 이유도 이것. "헤어질 때 서운하고 언제 또 얼굴 보나 아쉬워요. 한살림 안 했으면 내가 이렇게 전국을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나 싶어요."

"마을에서 큰 행사를 하면 쓰레기가 화물차 몇 대만큼 나와요. 그럼 내가 가서 다 분리수거했어요. 요즘은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비닐류를 태우는 걸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것 때문에 시골에 봄가을이 없어졌지. 농사시기도 많이 바뀔거예요. 환경이 이대로 가다가는 손주들이 태어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벼농사가 확대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축소시켜야 하니 제일 안타깝죠. 신규 생산자가 더 들어오게 해서 농업을 살려야 하는데 쌀 소비가 그렇게 줄어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집에서 밥을 안 해 먹으니 문제지요."

이렇게 하루하루 변하는 시대 속에서 부부가 바라는 건 소비자든 생산자든 모두 '첫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금당리공동체 땅콩 가공공장 앞에 선 부부. 몇 년 동안 송두영 씨는 공장 운영을 맡아 했고 경영란 씨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해 줬다. "우리 땅콩 맛있는 건 사람들이 다 알아요. 술 마시는 사람들은 특히 더 잘 알고. 수확해서 바로 볶아 먹으면 더 맛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