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과 싸우는 뱃신 | 배트맨의 초자연적 적들

한국의 배트맨 만화 팬이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작품이 있다. 국내에 최초로 정식 출간된 배트맨 그래픽 노블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악십', '악멘'(악십+아멘)이라는 약어로 더 유명한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이다. 제목 그대로 이 이야기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능력 없는 인간이 범죄자들과 벌이는 전쟁이라는 배트맨 스토리에 익숙한 팬이라면 왜 이런 황당한 설정으로 배트맨의 사실성을 망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75년을 넘는 긴 역사에서 악령,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다루어진 초자연적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는 배트맨의 주요 테마 중 하나였다.

2016-01-11     이규원

[배트맨 데이 기념 특별 연재 18] 사신과 싸우는 뱃신

─ 배트맨의 초자연적 적들

한국에서 유독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표지.

(사진 제공: 세미콜론)

불사의 존재

이야기의 배경은 멕시코의 무에르토 성. 성주인 무에르토 부부가 개최한 공동묘지 테마의 파티에 브루스 웨인도 참석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브루스 웨인은 두 사람이 '시빌 꽃'이라는 신비의 힘을 이용해 젊은 육체를 유지한 채 120년을 넘게 살아 온 불사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토리 작가 데니스 오닐과 만화가 닐 애덤스가 최초로 콤비를 이뤄 미국 만화의 역사에서도 중요하게 평가받는 이 작품에서, 무에르토 부부가 원래의 늙은 육신으로 변해 최후를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연상시킨다.

네오고딕풍으로 그려진, 환상에서 튀어나온 듯한 악당들이 등장하는 '파 놓은 무덤의 비밀'중 한 장면.

(사진 제공: 세미콜론)

배트맨판 지킬 박사 - 맨배트

배경은 '고담 자연사 박물관'.(『배트맨: 제로 이어』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박쥐 전문가인 하비 랭스트롬 박사는 위대한 배트맨도 가지지 못한 박쥐 본연의 힘을 열망한다. 그는 박쥐를 이용해 인간의 감각을 초인적인 수준으로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고 박쥐에서 뽑아낸 성분을 자신의 몸에 투여하는데, 어둠 속에서도 볼 있는 시력과 놀라운 청력을 얻은 대신 온몸이 점점 박쥐로 변해 가는 부작용을 겪으며 인간 박쥐 맨배트가 된다.

배트맨과 악령들

'배트맨의 첫사랑 - 줄리 매디슨'에서 소개한 바 있다.) 줄거리는 조카 다프네가 히슬로우 성의 가정교사가 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알프레드가 브루스 웨인에게 이를 직접 확인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시작된다. 이윽고 배트맨은 무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다프네는 10월 30일 자정에 태어난 여성을 악마 부활의 제물로 쓰려는 성주 클리프턴 히슬로우가 가정교사로 채용하는 척하며 감금한 것이었다. 흑마술사와 난쟁이로 구성된 악마 숭배자들이 그녀를 산채로 죽이려 하는 과정에서 다프네와 똑같이 생긴 정체불명의 여인이 배트맨을 돕는데, 그녀의 정체 역시 유령이다.

31년의 세월을 넘어 《디텍티브 코믹스》 31호를 오마쥬한 《배트맨》 227호 표지.

(이미지 출처:

오른쪽, http://dc.wikia.com/wiki/Batman_Vol_1_227?file=Batman_227.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낫을 든 저승사자

1971년 《배트맨》 237호에서 리퍼의 옷을 입고 살인을 저지르는 그뤼너 박사는 과거 나치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은 후에 평생을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 온 인물이다. 그는 당시 '도살자'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쳤던 수용소장 슐로스에게 복수하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배트맨과 대결하게 된다. 훗날 리퍼는 그뤼너 박사가 아닌 다른 인물의 버전으로도 등장하지만, 그뤼너 박사는 마블의 매그니토와 더불어서 그 탄생에 나치 수용소가 작용한 대표적인 빌런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현대사의 비극으로 인해 태어난 악당 리퍼. 그가 처음으로 등장한 《배트맨》 237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atman_Vol_1_237?file=Batman_237.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리퍼와 닥터 데스

또한 『제로 이어』에서 배트맨과 대면해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닥터 데스의 모습은 237호에서 거대한 낫을 들고 배트맨에게 과거의 일을 설명하는 리퍼의 모습과 닮아 있다. 원래 닥터 데스는 1939년 《디텍티브 코믹스》 29호에 등장한 배트맨 역사상 최초의 미친 과학자다. 뉴52의 닥터 데스는 이 원조 닥터 데스의 이름 위에 금단의 약물을 통해 스스로 괴물로 변해 버린 '지킬박사와 하이드'류의 이미지를 덧칠하고, 그 위에 다시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인물이 자신만의 정의에 따라 복수를 추구하는 1970년대 리퍼의 이미지를 더함으로써 태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늑대 인간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는 불사의 늑대인간에게 배트맨은 승리할 수 있을까?《배트맨》 255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Batman_Vol_1_255?file=Batman_255.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뱀파이어

현대적(?) 뱀파이어가 숨겨둔 심장을 찾아 그를 퇴치하려는 배트맨. 《디텍티브 코믹스》 455호 표지.

(이미지 출처: http://dc.wikia.com/wiki/Detective_Comics_Vol_1_455?file=Detective_Comics_455.jpg / TM &Copyright © DC Comics, Inc. ALL RIGHTS RESERVED.)

공포만화 세대의 작가들과 편집자들이 만든 배트맨

슈퍼맨 시리즈의 전설적인 편집자인 모트 와이징어와 함께 미국 SF팬덤을 형성해 온 인물로도 알려진 줄리어스 슈왈츠는 『싸이코』의 원작자 로버트 블록은 물론 공포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H.P 러브크래프트를 대표하는 작가 에이전시의 경영자이기도 했다.(줄리어스 슈왈츠와 미국 만화 팬덤 형성과 관련된 내용은 황금가지의 『이웃집 슈퍼히어로』 부록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기 바란다.)

* 이 연재는 세미콜론과 공동으로 기획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