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가 지배한다면?

제론토크라시는 고령자 지배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오구마 교수는 일본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이 제론토크라시라는 내용에 덧씌워진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그는 특히 3·11 동일본 대지진 뒤 피해 현장에서 그 지배체제의 민낯을 목격했다고 한다.

2016-01-06     이원재
ⓒgettyimageskorea

같은 기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천달러 미만의 미미한 수준에서 1만1천달러대로 훌쩍 뛰어오른다. 또한 65살 이상 고령인구 비율도 3%대에서 6% 근처로 2배 커진다. 재미있는 것은 1995년 한국의 위치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과 고령인구 비율은 거의 정확히 1970년 일본 수준에 있다.

일본에서 목격한 '제론토크라시'

같은 기간 한국은 어떨까? 1만1천달러 수준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 남짓으로 2배 뛴다. 그리고 65살 이상 인구 비율은 6%대에서 11%대로 2배가량 뛴다. 결과적으로 2010년의 한국은 다시 한번 1995년의 일본과 비슷한 위치에 서게 된다.

한국의 미래를 일본에 빗대본 것은 2014년 일본에서 목격했던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지난해 나는 일본에서 두 달 동안 지내며 일본 사회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센다이, 후쿠시마, 이시노마키 등 3·11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을 둘러보기도 했다. 일본 사회의 역동성을 다시 불어넣으려 애쓰는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등의 저서로 유명한 인문학자다. 그런데 그는 일본 사회의 여러 문제를 설명하면서 제론토크라시로 단순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구마 교수가 일본 사회를 제론토크라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본 사회가 중앙부터 지역까지 촘촘하게 외부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제적인 고령자 지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특히 3·11 동일본 대지진 뒤 피해 현장에서 그 지배체제의 민낯을 목격했다고 한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는다. 경제는 저성장을 맞고 글로벌화로 기업들의 해외 아웃소싱이 일반화된다. 비정규직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기 시작하며 지역경제는 피폐해지는 과정이 진행된다.

고령자 '리더'가 '지배자'로 바뀌어가고

정부는 이 지역에 공공일자리(Public Work)를 만들어 인구 유출을 막으려 한다. 정부가 지원금을 내어주면 그 돈으로 지역주민들이 공공사업에 고용되어 일하는 방식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다. 그런데 대대적인 공공일자리 사업의 결과, 지역주민들이 의존적으로 변화해가기 시작한다. 공공일자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인구가 늘어나고, 공공일자리가 줄면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러면 공공일자리를 더 줄일 수밖에 없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정부는 각종 지원 정책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지원 대상이 개인이 아니었다는 데 문제의 시작이 있었다. 일본 중앙정부는 지역사회와 지방정부를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취지는 좋았다. 개인을 돕는 것보다 공동체를 돕는 것이 지역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명분에서였다.

결과적으로 활력을 잃은 가마이시 지역은 제철소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만다. 인구는 줄고 고령화가 진행된다. 9만 명이던 인구가 절반이 되었고 65살 이상 인구가 30% 이상으로 변화해간다.

30년 불황·저성장 고착화의 원인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경찰관들이 무너진 건물에서 희생자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배제되는 고령자 지배체제인 '제론토크라시'가 지진 복구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피해 지역에서는 비상 상황이라는 이유 아래 경제성이나 환경영향평가 없이 대규모 건설공사가 마구 벌어졌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에서였다. 이들은 상당 부분 정부 지원사업의 일환이었다. 동일본 지역 곳곳에선 도로 복구공사와 해변의 대규모 방조제 공사가 벌어진다. 쓰나미를 막는다는 명분에서였다.

이들 대부분이 정부 돈으로 진행되는 공사다. 공공일자리가 대거 나온다. 그 일자리를 배정하는 권한은 다시 고령의 지역 토호들 손으로 넘어간다. 그들이 고령의 지역 정치인과 고령의 정부 관료들과 통한다. 그들이 받아온 돈으로 젊은이들이 생존할 수 있게 나누어줄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30년 동안 제론토크라시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30년 동안의 불황이었다. 저성장의 고착화였다. 집권 '자민당' 보수정치의 일당지배였다. 일본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소니는 삼성에 밀렸고, 세계 2위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놓았다. 정치도 경제도 악명 높은 담합 구조가 됐다. 오랜 기간의 고령화 추세와 소득수준 향상, 그리고 사회 각 부문에서 기득권을 온존시키면서 가져온 사회적 결과다.

그게 바로 1995년 이후 2010년까지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어쩌면 한국에서 앞으로 10년, 15년 동안 벌어지지는 않을지 두렵다. 고령화율과 1인당 국민소득 추이가 그 길을 따라가고 있듯이 말이다.

노인층 심기 거스르지 않으려는 정치권

어쩌면 한국에서 제론토크라시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과거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한국도 이대로 가다가는 그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이라도 무언가 충격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고령자 지배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도록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