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같은 소파를 사야지

한 달 전부터 이사 갈 집을 찾아 다녔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형도 같은 생각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밖에 나가 이 동네 저 동네 부동산을 부부구경단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물론 다닐 때마다 저희는 일심동체이다 못해 일심동성까지 된 부부입니다, 라고 하지는 못하고, 방을 나눠 쓸 선후배 사이라고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되도 않는 거짓말을 누가 믿었을까 싶기도 하다. 형은 날 쳐다만 봐도 눈에서 파블로프의 하트가 뿅뿅 나오는데.

2016-01-06     김게이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서울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이사 갈 집을 찾아다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그 전 집도 너무 돈에 맞춰서 타협해 들어간 느낌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좀 더 우리가 진짜 살고 싶은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형도 같은 생각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밖에 나가 이 동네 저 동네 부동산을 부부구경단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물론 다닐 때마다 저희는 일심동체이다 못해 일심동성까지 된 부부입니다, 라고 하지는 못하고, 방을 나눠 쓸 선후배 사이라고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되도 않는 거짓말을 누가 믿었을까 싶기도 하다. 형은 날 쳐다만 봐도 눈에서 파블로프의 하트가 뿅뿅 나오는데.

계약금 걸 때만 해도 이사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네 싶었는데, 어라, 지금 보니 내가 32살이고 이사는 한 달 남았네? 계약 마치고 그동안 한 거라고는 줄줄이 이어진 송년회에서 술 마신 것밖에 없는데, 폭탄 돌리기 하다 잠깐 딴 생각한 사이에 내 앞에 폭탄이 멈춘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요즘 홈쇼핑에서 자주 애용하는 무료체험 기회처럼, 32살을 한 달만 이용해 보고 무료로 반품해버릴 순 없을까 하...

지난 연휴 때 그나마 여기저기 규모 있는 가구 거리의 매장들, 백화점 매장들을 찾아 다니며 마음에 드는 침대를 계약한 게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이것도 무슨 파랑새의 축복인지 연금술사의 저주인지, 논현동에 용산에 여기 저기 대형 매장, 백화점 다 알아보고 돌아왔는데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 더 싼 값에 준다고 해서 10분 만에 계약했다. 물론 싸게 잘하긴 했는데 뭔가 억울해...

인상적이었던 건 가구거리 매장들을 거의 사립탐정 수준으로 샅샅이 조사하며 돌아다녔는데, 그 수많은 매장에서 한 번도 나와 형의 관계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어차피 사지도 못할 500만원짜리 매트리스에 둘이 함께 누워 와, 여기서 매일 잘 수만 있다면 주 5일 근무도 불평 없이 할 수 있겠어, 라고 감탄하고 있는 순간에도, 옆에서 이 비싼 매트리스의 비쌀 수밖에 없는 재질과 구조를 설명해주던 직원분은 이 침대를 누가 쓸 건지, 우리 둘이 무슨 사이인지 한 번도 묻질 않았다. 부동산 다닐 때마다 애정의 체취를 숨기기 위해 선후배라는 위장향을 뿌려야만 했던 경험에 무척 피로했던 우리로서는, 침대 쇼핑하는 동안만은 예상 외로 500만원짜리 매트리스만큼 무척 안락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가구 매장 직업군을 닮을 필요가 있다. 이분들처럼만 세상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을 안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진짜 오지랖이 없는 거든 고도의 영업 전략이든.

가전제품이야 워낙 형의 덕력이 충만하니 예산만 정해 주면 알아서 최선의 선택을 할 거고, 그래서 우리는 이제 소파를 함께 결정하러 가기로 했다. 침대 보러 다니면서 당연히 소파도 열심히 살펴봤지만, 아직 뭔가 부족해. 이 놈의 소파들은 어릴 때 나 좋다고 쫓아다니던 남자들도 아니고 잘생겼으면 불편하고, 편하면 못생겼어... 어딘가에 분명 나 같이 주제 모르고 외모와 내면을 모두 따지는 사람에게도 어울릴만한, 오래 같이 있을수록 나에게 더 잘 맞는, 계속 봐도 질리지 않고 항상 좋기만 한, 우리 형처럼 멋지고 편한 소파가 있을 거야.

(www.snulife.com 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