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의 시간이 올 때

그동안 쌓아온 두산 그룹 오너의 개방적인 이미지는 도리어 이번 일을 계기로 젊은이들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이하며 낙엽처럼 바스라졌다. 디자인이라고 예외일까. 경제 불황을 예상하는 2016년에는 디자인에 대한 기업과 사람들의 인식을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래 들어 디자인 경영부터 시작해 '디자인이 기업의 미래'라고 떠들어대며 막대한 돈을 투자하던 수많은 기업들은 위기의 파도를 겪으면서 디자인에 대한 대처를 시작할 것이다.

2016-01-05     전종현
ⓒgettyimagesbank

그동안 쌓아온 그룹 오너의 개방적인 이미지는 도리어 이번 일을 계기로 젊은이들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이하며 낙엽처럼 바스라졌다. 정말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씁슬한 풍경이었다. 이런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위기는 사물의 치장을 발가벗겨 그 진본성을 노출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위기는 기회다. 우리가 평소 인지하지 못하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계기를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디자이너 또한 마찬가지다. 유명 디자인 회사와 스타 디자이너의 능력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그 명암이 달라질 것이다. 트렌드에 편승해 눈속임으로 작업하던 쭉정이 회사와 디자이너는 위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루룩 밀려날 것이다. 오히려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작업에 몰두하며 제 나름의 철학을 고수하던 이들은 진흙이 씻겨간 자리에 남아 마치 진주처럼 영롱한 빛을 내지 않을까. 애초부터 진지한 태도로 완벽함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드디어 주목받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당대 사람들이 보지 못한 뒷부분과 천장화 구석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그들의 선견지명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됐다. 올해 우리가 알게 될 진실은 어떤 것일까. 화장이 지워진 민낯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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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CA Korea 2016년 01월호 'INSIGHT'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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