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쿠데타가 진행중이라면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임기연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87년 6월항쟁의 최대 열매 가운데 하나인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최근 몇년간 착실히 축소되어왔다. 2012년 선거에서의 대대적인 관권개입과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대부분 흐지부지되었고, 수사기관의 독립성, 관료조직의 중립성, 언론의 공정성 등 재발방지 장치들이 하나같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시민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의사를 직접 표시할 기회는 극도로 억압되었다.

2015-12-31     백낙청
ⓒ연합뉴스

이남주 「역사쿠데타가 아니라 신종 쿠데타 국면이다」). 이것이 상투적인 과장이 아니라면 '신종 쿠데타'가 무엇인지부터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단의 적절성을 검증할 수 있고 올바른 처방을 낼 수 있다. 동시에 쿠데타를 막아내고 무얼 하겠다는 건지도 따져봐야 한다.

「광복 70주년, 다시 해방의 꿈을」, 창비주간논평 2014.12.30), 쿠데타가 '진행중'이라는 표현 자체가 하루아침에 총칼로 세상을 바꿔놓는 군사정변과는 다른 '신종' 사태임을 말해준다. 이남주 교수는 이를 '저강도 쿠데타' 또는 영어로는 한층 실감나는 'creeping coup d'état'(슬금슬금 기어들어오는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했다.

어떤 '신종'인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보여주듯이 이 과정은 목표가 반시대적일뿐더러 절차가 불법·탈법적이고 '대한민국 대 반대한민국' '통일을 대비하는 전국민의 사상무장' 등 유신시대의 선전문구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당연히 '역사쿠데타'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 교과서 문제에만 골몰하다보면, 이 정권이 한없이 어리석고 황당한 집단이라고 얕보기 쉽고, 설혹 국정화를 막지 못하더라도 '1년짜리'로 끝날 테니 잠시 버텨내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무능하고 무모한 면모가 엿보인다 해도 한국의 기득권세력이 정말 그토록 멍청한 집단인가. '1년짜리' 여부도 다음 대통령선거 결과에 달린 것 아닌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같은 전략가가 못 되기에 신종 쿠데타는 그 추진과정이 일사불란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4대강사업 같은 일에 한눈파는 일 없이 '100% 국민통합'과 '하극상 불용납'의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독기에 가까운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음이 돋보인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런 지원을 받는 수구세력은 기나긴 세월을 통해 축적해온 체질화된 '노우하우'와 정권상실 10년의 원통함을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공유하고 있다. 최고위 전략가의 공백을 능히 감당할 형국이다.

87년체제 다음은?

이처럼 전망 없는 쿠데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의심할 수 있지만, 지상목표가 나라야 어찌 되든 '해먹던 사람들이 계속 해먹는 것'인 사람들에게는 이 목표의 달성이 곧 성공이다. 그런데 87년체제의 한정된 민주주의조차 항시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에 그 위험부담을 제거하기 위해 쿠데타라도 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선거공간과 더불어 6월항쟁의 또다른 열매인 삼권분립도 그사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하지만 지난 12월 5일의 평화적인 대중집회가 가능했던 것만 해도 법원의 독립적 결정에 힘입은 것이었고, 입법부에 대한 대통령의 부당한 압박을 견뎌낸 것은 정의화 국회의장의 상식적인 처신과 더불어 의석 5분의2 이상을 점유한 야당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세월호사건의 진실규명 작업도,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애당초 특별법 자체를 무산시키려 했고, 그게 안되자 시행령을 통해 법률을 무력화하려 했으며, 그런 방해공작을 뚫고 특조위가 출범하고 드디어 청문회가 열렸을 때 철저히 비협조로 나왔다. 그러나 국회가 아닌 민간이 소환권을 행사한 최초의 청문회가 조그만 진실의 조각 몇개라도 캐내는 것을 아주 막지는 못했다(이태호 「세월호 특조위의 첫 청문회가 남긴 것」, 창비주간논평 2015.12.23).

그럼 어떻게?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이 곤혹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어차피 선거는 정당 중심으로 치러지게 되어 있고 여당을 꺾으려면 야당 후보가 이겨야 하는데 도무지 그게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안 생기는 것이다. 사실 2012년과 달리 야권에는 대선후보감이 많고 여당이 오히려 인물난이다. 문제는 코앞에 닥친 2016년 총선인데, 다음 대선이 87년체제가 건재한 상태에서 치러지는 '정상적'인 선거라면 총선은 총선이고 대선은 대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87년체제의 민주주의를 허물어가는 일련의 기획에서 19대 대선이 그 종결수순에 해당한다면 여당의 총선 압승은 그 기획에 엄청난 추진력을 더해줄 것이다. 그러잖아도 이제까지 신종 쿠데타에 번번이 힘을 보태준 것이 근년의 크고 작은 중간선거에서의 야당의 패배가 아니었던가.

예컨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채 무산된 이른바 '문·안·박 연대' 제안도 이 물음을 먼저 물었더라면 그런 식의 실패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부질없는 이야기가 됐는지도 모르지만) 한두달 전에라도 신종 쿠데타에 대한 위기의식이 공유되는 가운데 당대표가 혁신과 단합의 동시적 수용을 조건으로 대표직에서 선제적으로 물러났더라면 국민과 당원에게 감동을 주고 선거승리에 크게 이바지하는 길이 열렸기 쉽다. 또한 그러한 이바지의 한 수단으로 당내 유력 대선후보 3인이 사심없이 협업하는 연대가 가능했고 훨씬 위력적이 아니었을까.

새해에 독자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평상심으로 비상시국을 이겨내는 복도 많이 지으시기를 기원한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