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절대악과 절대선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우리는 위안부를 동원한 일본 제국주의를 절대적인 악으로 간주하고, 그에 반해 피해자인 우리 민족을 절대적인 선으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위안부 동원에 조선인들의 협력과 자발성이 있었음을 지적함으로써 기존의 일본 제국주의=절대악, 조선=절대선이라는 등식을 깨뜨린다. 박유하 교수에 대한 비난과 분노는 이러한 등식이 깨어짐에 대한 당혹감과 혼란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5-12-21     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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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우리는 위안부를 동원한 일본 제국주의를 절대적인 악으로 간주하고, 그에 반해 피해자인 우리 민족을 절대적인 선으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위안부 동원에 조선인들의 협력과 자발성이 있었음을 지적함으로써 기존의 일본 제국주의=절대악, 조선=절대선이라는 등식을 깨뜨린다.

에서, 그러한 시각을 멜로 드라마의 세계라고 지적한다. 멜로 드라마의 세계는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콩쥐 팥쥐>의 세계, <흥부전>의 세계이다.

위안부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위안부는 제국주의의 지배 속에서 동원된 존재이며, 식민지인들은 거기에 강제 당하면서 또 협력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 일본군과 위안부의 관계 역시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것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상대적인 악과 상대적인 선의 관계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었을 것이다.

절대주의에 빠진 존재에게 이 세계는 잔인한 이분법의 지옥일 뿐이다. 적과 우리편, 너와 나, 좋음과 나쁨의 이분법. 하지만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 세계를 보면 너와 나는 삼투하고 상응한다. 그것은 좀 더 현실적인 세계이며,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나눠져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우리의 식민지 경험과 기억에 대한 절대주의적인 시각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며, 그런 점에서 기존의 인식을 강타하는 저서이다. 이 점이 바로 우리를 당혹감과 혼란으로 몰아넣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