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돌아온 이한열의 성적표(사진)

2015-12-13     강병진

윤씨가 도착했을 때는 사건이 발생한 지 이미 이삼일이 지난 뒤였다. 집에는 발 빠른 일간지 기자들이 몰려들어 기삿거리가 되는 물건들을 다 챙기고 나가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었다. 이한열의 큰어머니와 고모가 황망한 모습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윤씨가 조심스럽게 자기소개를 하고 취재에 참고할 만한 것들이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이들은 "모르겠소. 있는지 들어가서 찾아보시오"라고 힘없이 답했다.

이후 그는 이한열의 집에서 가져온 자료를 지니고 있으면서 늘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과거 학생운동 '동지'였던 김학민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최근 만난 일을 계기로 자료를 기념사업회에 넘겼다.

이한열의 초등학교 2학년 성적표에는 '항상 똑똑하게 발표하며 성적도 우수하고 사고력도 뛰어나 판단력도 좋다'는 교사의 평가가 적혀 있다. 5학년 때는 '학습 태도가 바람직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립니다. 칭찬해 주십시오'라는 의견이 달렸다.

성적통지표를 보고 부모가 회신한 글에는 '예습과 복습을 많이 출제해 가정학습을 많이 하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기자가 당시 가져간 이한열 관련 자료를 돌려받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며 "지금까지 유족에게서 말로밖에 전해 들을 수 없었던 이한열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28년 동안 한열이의 물건을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준 것도 고마운데 이제라도 돌려줬다니 정말 고맙고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기념사업회는 전했다.

이후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고, 여러 매체에서 편집국장과 논설주간 등을 역임하다 2008년 전남 해남으로 내려가 시를 쓰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