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기소에 대한 입장 | 저는 위안부할머니를 폄훼하지 않았습니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고 지원 단체는 위안부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라는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 그 이전에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중에서도 위안부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찰 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의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2015-12-02     박유하

* 이 글은 2015년 12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발표한 기자회견문입니다.

<집필배경>

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도 위안부문제의 해결에 줄곧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여름, 2006년에 위안부할머니들의 이름으로 고발당했던 외교부가 소송에 패소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정황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같은 해 겨울, 수요시위라는 이름이 붙은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 1000회를 기념하는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지면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때 다른 책을 집필 중이었는데 그중에는 위안부문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헌법재판소에서의 외교부 패소와 소녀상문제로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론자>라고 하는 일본인터넷잡지의 의뢰를 받고 글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원래 일본을 향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과 일본정부와 지원자들의 방식과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쓰인 책입니다.

내셔널아이덴티티와 젠더-소세키/문학/근대>참조)

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난 일이 있었습니다.

고 생각했던 때와 비교해 한 치도 달라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정황에 의문을 품고, 지원 단체의 주장에 과연 문제가 없는지 검증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에 있는 것처럼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고 지원 단체는 위안부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라는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 그 이전에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중에서도 위안부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찰 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의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보상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위안부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향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도 <제국의 위안부>도, 발간 직후에는 제 책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리뷰와 인터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드러난 <소녀상>과는 다른 위안부상과, 한일관계에서 주요발언단체가 되기까지 성장한 지원 단체 비판을 불편해 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문제된 부분에 대해>

과 <동지적 관계>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습니다.

이미지에 집착하는 이들은 매춘에 대한 격한 혐오와 차별감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허위>라고 부정하는 심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당하고 고통 속에 신체를 훼손당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라는 말을 쓴 첫 번째 이유는 조선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동원당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런 틀 안에서 있을 수 있었던 일본군과 조선인여성의 또 다른 관계를 쓴 것은 우선은 총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고, 동시에 그런 모습마저 보아야 표면적인 평화 안에 존재했던 차별의식, 제국의 지배자의 차별의식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 성과 신체를 동원당한 개인으로 간주하게 되면 일본에 대한 사죄와 보상 요구 이유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들에게조차 보장되었던 법의 보호가 없었다는 것을 일본을 향해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그들이 말하는 단순한 <매춘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의 문제를 말한 것은 우선은 국가정책을 빌미로 협력하며 이득을 취하는 경제주체의 문제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런 <협력과 저항>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조선인 업자만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규모가 큰 업자는 일본인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국가가 아무리 나쁜 정책을 써도, 국민들이 저항하는 한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업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을 구매하고 때로 강간한 것은 군인이지만, 착취하고 폭행하고 감시하고 때로 납치와 사기에 관여한 것은 업자였습니다. 그리고 빚을 지워 지배하며 <노예>상태로 둔 것은 업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죄와 책임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저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그러한 인간착취의 문제와, 그런 업자를 이용하는 국가와 제국의 문제, 그리고 나쁜 <국가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싶어 업자문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협력자를 직시하지 않고 또 다른 추종과 협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정치공동체만을 죄와 책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저 역시 이 책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똑같이 전쟁터에 동원하면서 조선인일본군에게는 했던 보장 - 생명과 신체가 훼손되는 데 대한 보장 - 제도를 일본인여성을 포함한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서는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근대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적 사고, 매춘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근대국가의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런 인식에 입각해 사죄와 보상의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과분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을 저는 이러한 생각이 받아들여진 결과로 생각합니다.

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대부분 <매춘부취급>을 했다고 그들이 단정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매춘부취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매춘부라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부분마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제가 한 말로 환치시켰습니다. 물론 언론은 대부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1차적 책임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고 측은 처음에 <허위>라고 했던 주장을 바꾸어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공공선>에 반하는 책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발 당시의 주장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말하는 <거짓말>을 쓴 책이라는 보도는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저를 공격하는 자료로 사용되곤 합니다. 특히 고발, 가처분, 기소 때 도합 세 번 저는 전 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15년12월 2일

박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