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뜨고 싶지 않냐고? 홍대씬을 알려주마

이런 실력 있는 사람들이랑 동료로 일 할 수 있고 이런 음악팬들 앞에서 연주 할 수 있다는 게 이미 영광이고 자랑스럽다. 근데 막 락페도 나가고 앨범도 내고 단독공연도 하고 레이블 콘서트도 하고 솔직히 이번 인생 그냥 재밌고 개짱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밴드 하겠다고 그러면 너무 재앙이 일어난 거처럼 마음 아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차피 요즘 뭐해도 먹고 살기 힘든 거 매한가진데. 재밌게라도 살면 좋잖아요.

2015-12-01     서상욱

나는 최근에 좀 기분 나쁜 피드백도 몇 번 받았는데. 솔직히 상관없고 신경 별로 안 쓰임. 근데 딱 하나, 니가 그렇게 잘하면 진작에 떠서 메이저로 가서 돈 벌었을 거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 인디씬을 아직 못 뜬 애들이 모인 동네처럼 얘기하는 거에는 내가 너무 빡이 쳐서 진짜... 장하다 너. 성감대 잘 건드렸어. 그리고 곧 있으면 단물 빠질 거니까 물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훈수도 막 주시고. 오케이. 대체 뭐가 단물이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처럼 인디음악 모르는 분들이랑 페친도 먹고 한 김에 나 이런 글 쓸 자격 없다고 생각하지만 궁서체로 노 한 번 저어볼게요. 긴 글인데요. 한번 힘 실어주고 싶다고 하셨던 분들 그냥 이거 읽어 주는 걸로 퉁치세요. 이번엔 욕도 거의 안 넣을게요.

사진출처 : 제8극장 페이스북

근데 홍대씬이라는 게 클럽 있고 밴드 있고 땡이 아니다.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한국 최고의 밴드 사운드를 만들고 있다. 이 인간들 진짜 무시무시한 괴물들인게 가요는 엠알시디 틀어주면 되지만 우리는 악기 소리들을 다 잡아줘야 된다. 근데 하루에 4팀 5팀이 30분씩 연주하고 교체되는데 그때마다 매번 사용하는 악기가 싹 바뀌고 연주하는 장르도 바뀐다. 이거를 보통 한명의 엔지니어와 스탭 몇 명이 다 소화해냄. 더 미친 건 이 인간들은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달 내내 해내고 있다는 거. 밴드들은 깐깐하기 그지 없고 관객들은 오늘 여기 공연장 사운드가 어쨌네 저쨌네 하며 바로 인터넷에 피드백을 올린다. 이들을 수년간 만족시켜온 실력자들이 수두룩함.

팬들은 매달 라클데 라인업이 발표 되길 기다리고 라인업이 나오면 어떻게 돌아다니면서 어떤 공연장에서 누굴 볼지 계획한다. 중간에 딱히 보고 싶은 팀 없는 시간에는 근처에서 밥 먹어도 된다. 마침 여기 홍대라 맛집도 많다. 근데 밥먹고 나오다가 방금아까 공연 봤던 밴드가 악기 들고 지나가는 걸 볼 수도 있다. 밴드맨 입장에서 이럴 때 아까 공연 너무 잘봤다고 인사해주면 엄청 반갑고 고맙다.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줄 수 있다. 나처럼 막 페북에 팬들이랑 댓글놀이도 하고 그런다.

밴드맨으로서 정말 재밌는 공연 많다고 자부한다. 팬도 기획자들 덕분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많이 느끼겠지만 밴드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홍대씬이 그냥 클럽과 거기서 공연하는 밴드만 있는 세계인 거보다 훨씬 재밌다. 레벨업 하는 맛도 있고. 라클데나 잔다리 때 우리 공연을 보던 관객 중에는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애들도 있어서 오오 나도 언젠가 라클데를.. 이러면서 괜히 설레고 흥분되고 그랬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와 같은 소속사의 보이즈 인 더 키친은 활동을 시작하고 첫 일년 동안은 주말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지금은 공연 때마다 팬들이 와서 대표곡들을 따라부른다. 나는 올해 잔다리 페스타에서도 연주하고 여러 차례의 라클데에서도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근데 이거 아마 홍대 뮤지션들은 뭘 또.. 하고 새삼스러워 할 거다. 너무 당연한 거라서. 그냥 우리한테는 이게 너무 당연한 거다. 그런 애들이라 메이저 음악판에 안 가고 여기 있는 거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리고 우리도 다 뜨는 거 좋아한다. 돈 좋아하고. 고고하게 우린 돈과 명예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거 아님. 야망 있음. 근데 그게 우선순위 맨 꼭대기가 아닌 거다. 그래서 애티튜드도 다 다르고, 음악 스타일도 다르고. 음악에서는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런 철학도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그 와중에 좀 더 비슷한 애들끼리 모이게 되고 홍대씬 안에도 또 몇 개의 씬으로 나뉜다. 이건 뭐 딱 칼같이 나뉘는 건 아니고 부르는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암튼 어느 정도 구분이 있다. 자주 공연하는 클럽도 서로 좀 다르다. 다른씬에 있는 팀하고는 서로 잘 모르고 마주칠 일이 생각보다 없다. 나는 김사월x김해원 음악을 좋게 들었지만 그 분들이랑 한번도 못 마주쳤다.

이런 실력 있는 사람들이랑 동료로 일 할 수 있고 이런 음악팬들 앞에서 연주 할 수 있다는 게 이미 영광이고 자랑스럽다. 근데 막 락페도 나가고 앨범도 내고 단독공연도 하고 레이블 콘서트도 하고 솔직히 이번 인생 그냥 재밌고 개짱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밴드 하겠다고 그러면 너무 재앙이 일어난 거처럼 마음 아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차피 요즘 뭐해도 먹고 살기 힘든 거 매한가진데. 재밌게라도 살면 좋잖아요.

진짜 대안은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서로 많이들 얘기했으면 좋겠고 난 그냥 인디밴드가 못 떴고 돈 없고 불쌍한 애들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빨리 너도 혁오처럼 되서 무도나가고 해야지' 이런류의 얘기 안 들어본 홍대 뮤지션 몇명 없을 거다. 혁오자리에 다른 이름 넣어도 되고. 어차피 홍대밴드 전체가 다 뜰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된다고 해도 어차피 누군가는 홍대 클럽에 남아 '빨리 너도 제8극장처럼 되야지' 이런 소리 들어야 하는 건 매한가지임. 근데 다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팬도 있고 자기음악 멋있게 잘 하는 사람들임. 그 자체로도 멋있어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됨.

제8극장 | 서상욱(보컬, 기타, 베이스, 리더), 임슬기찬(기타, 코러스), 함민휘(키보드, 기타, 베이스, 클라리넷, 코러스), 김태현(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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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