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패권의 역사 : 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중국?

2015-12-01     허완
ⓒGettyimagesbank

필리핀, 태국 등 관광산업이 발전한 국가에서는 페소나 바트가 없으면 달러로 계산을 할 수도 있고 팁으로 1달러씩 주기도 한다. 이처럼 달러는 전 세계 어디서나 공신력 있고 쉽게 받아들이는 화폐, 국제 통화라고 봐도 손색이 없다.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의 '길더'가 널리 쓰였고 스페인의 '페소 데 오초'가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 '경제 패권국의 왕좌' 포르투갈에서 스페인·네덜란드·영국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해상무역권을 장악했고 막대한 귀금속과 향신료를 유럽으로 들여왔다.

'스페인에서는 은 빼고 모든 것이 비싸다'(everything is dear in spain, except silver)는 말이 퍼질 정도였다고 경제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통해 설명했다.

1588년 영국 해군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완파하면서 스페인 중심의 해상권이 흔들렸다. 양국이 전쟁을 벌이면서 국력을 소진하는 사이 기회를 얻은 것은 네덜란드였다.

암스테르담에 최초의 근대적 은행을 두고 수표를 만드는 등 발달한 상업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 시기 네덜란드의 길더화가 국제통화의 역할을 했다.

당시 영국은 파운드화를 금에 연계하는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세계 각국은 파운드화를 교역 시 결제용도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 같은 파운드화의 전성시대는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끝을 맞는다.

◇ 대영제국에서 미국으로…일본·유럽연합·중국의 도전

멘지 친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경제 규모가 영국을 뛰어넘은 것은 1872년이며, 1915년에는 수출 규모까지 따라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패전국인 독일, 일본은 물론 영국, 소비에트연방, 프랑스 등 승전국에도 상처만 남긴 채로 마무리되면서 판세가 바뀌었다.

1944년 7월4일,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유엔 통화금융 회의에서 44개국 대표들이 회의를 여는 모습. ⓒAP

브레튼 우즈에 모여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삼는 금환본위제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금 1온스는 미국 35달러에 고정됐으며 이듬해 국제적으로 달러화의 사용량이 파운드화를 앞섰다.

일본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면서 엔화가 달러화에 도전했다.

플라자 합의를 거치면서 일본 경제는 주춤했고 곧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에 빠졌다.

현재 달러화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의 자리에 오른 중국 위안화다.

역사상 국제통화의 자리가 끊임없이 뒤바뀌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위안화의 SDR 편입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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