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 원작엔 없지만 영화엔 있는 것

원작에 없으나 영화에는 있는 것이 있다. 분노다. 영화는 등장하는 나쁜 놈들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위해 원작이 가지고 있던 많은 미덕들을 제거한다.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세계는 얕아졌다. 하지만 나쁜 놈들이 왜 나쁜 놈이고, 그들이 큰 틀에서 어떻게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해악을 입히는지에 대해서만은 결을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말 열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직 이 부분만이 영화가 현실을 담보로 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2015-11-13     허경
ⓒ쇼박스

에서부터 얼마 전 연재가 끝난 <파인>까지 그의 작품은 나쁜 놈과 나쁜 일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미생>은 예외다.) 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 <내부자들>은 야심이 가장 컸던 작품이다. 정치, 언론 그리고 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공생하는지,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깊이 들여다보려 했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완결 짓지 못했다. 73회로 중단된 웹툰을 두고 윤태호는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 라는 자문에 대답할 수 없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악취 나는 인간들의 더러운 이전투구를 다룬 이 작품에 딱 보면 누군지 알 만한 사람들의 얼굴과 심볼들이 마구 등장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점점 더 커져갔고, 조금만 오독을 해도 이건 무엇인가(혹은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2012년 8월이라는 절묘한 중단 시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외압이 있다는 추측(하지만 윤태호 작가는 외압이 없었음을 밝혔다.)을 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우민호 감독의 손에서 재탄생한 <내부자들>이 꽤 마음에 든다. 위의 지적들을 모두 수용하고 나서도 그렇다. 원작에 없으나 영화에는 있는 것이 있다. 분노다. 영화는 등장하는 나쁜 놈들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위해 원작이 가지고 있던 많은 미덕들을 제거한다.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세계는 얕아졌다. 하지만 나쁜 놈들이 왜 나쁜 놈이고, 그들이 큰 틀에서 어떻게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해악을 입히는지에 대해서만은 결을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말 열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직 이 부분만이 영화가 현실을 담보로 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개봉 전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등장하는 많은 묘사들이 현실과 오버랩되며 짜증을 유발하기도 또 시원하게도 만든다. 특히 이강희가 안상구(이병헌)에게 당한 물리적인 복수는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 안에 본 어떤 영화의 복수 중에서도 가장 통쾌한 것이었다.

극 중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가 미래모터스 회장 오현수(김홍파)에게 하는 대사다. 그리고 그 들에게 덤비는 개, 돼지 중 독한 두 놈이 아주 크게 짖는다. 나는 이 영화가 한국의 2015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스스로도 몰랐지만, 이런 이야기가 보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윤태호가 중단했고, 또(만약 이어졌다 해도) 가지 않았을 길을 우민호 감독이 갔고, 이는 <내부자들>의 다른 판본으로서 꽤 좋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