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부자를 찾아 떠난 여행] 1.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한 억만장자 닉 하나우어

자신을 기업가 겸 시민운동가라고 소개한 그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그들이 더 많이 버는 것이 제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소득이 늘면 제 회사나 제가 투자한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하나라도 더 소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조차 없습니다. 최상위 1%의 소득이 더 는다고 이미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그들이 더 쓰지는 않습니다." 그는 2013년부터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중산층과 서민이 체제 전복적인 움직임에 나서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2015-11-12     김방희

수박 겉핥기식 관광이 아니라면, 정보통신(IT) 대표 기업들이 즐비한 이 도시의 전통을 곧바로 실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곳에는 어딜 가든, 누구를 만나든 미 서부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실리콘밸리의 창의적인 감각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 부호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신흥 부자들이 이 도시에 몰려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빌 게이츠뿐만이 아니다. 시애틀에는 1세대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손을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최근 이 도시는 미국 최초로 2017년까지 시간당 최저 임금을 15달러(약 1만7천원)까지 올리기로 한 결정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 결정은 비교적 진보적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뉴욕에도 상륙하기 직전이다. 이 움직임을 주도한 것은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시애틀의 억만장자들이 앞장서서 최저 임금 인상안을 이끌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닉 하나우어다. 그는 4대째 물려받은 가문의 사업이 있기는 하지만 IT 투자로 스스로 돈을 번 벤처캐피탈리스트다. 마이크로소프트에 간여한 적도 있고, 아마존에는 창업주 제프 베조스 가족 외의 최초 투자자였다. 스스로 1년 수입이 적게는 1천만달러(약 1백15억원)에서 3천만달러에 달한다고 밝히는 이이기도 하다. 신흥부호답게 대저택과 자가용 비행기, 요트 같은 재산을 굳이 숨기려 들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주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중산층 이하 계층을 돕는 것이 어떻게 부자도 돕고 자본주의를 살리는 길인지를 역설하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뉴욕타임스>로부터 '저항적 억만장자(billionaire heading to barricade)라는 평을 들었다.

"지난 30년간의 보수 혁명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답답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던 차에 한 방송사의 도움으로 닉 하나우어를 직접 만나 대담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말 시애틀항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그의 사무실에서였다. 그는 타이를 매지 않은 편안한 차림으로 맞아주었다. 공부하는 기업가답게 그의 사무실에는 서적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 책들 사이로 요즘 배우고 있다는 기타 한 대가 눈에 뛸 뿐이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기업가가 최저 임금 인상을 포함해 중산층과 서민의 소득 증대에 신경 쓰는가?

그는 자신의 이론에 '중산층 구출'(middle-out) 정책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그가 중산층 이하 계층의 소득 증대를 외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실험된 보수 혁명이 실패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이 주장의 핵심은 낙수(trickle-down) 효과라는 것이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면 이들이 일자리를 더 만들어 중산층 이하에게 그 혜택이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논리였다. 그 주장이나 논리대로라면 지금쯤 미국에는 일자리가 차고 넘쳤어야 했다.

하나우어의 주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온 월가점령운동이나 토마 피케티의 책,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히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분교 교수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하나의 경제 사조나, 이 주장이 배경이 된 정치적 흐름으로 이어질지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신흥 부자들 사이에서도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은 물론 끊임없는 부의 재창출을 위해, 소득이 늘지 않는 불평등한 체제의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 이 글은 데일리한국에 게재된 글입니다.